두주일전까지 같이 살던 막내아들이 분가를 했다. 동부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집에 돌아와서 다운타운에 있는 조그마한 전자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지 3년이 지났다. 그 동안 부모 밑에서 독립 분가할 여건이 여의치 않아 얹혀사는 것이 자기 딴에는 불편했고 자존심이 크게 상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그러나 부모인 우리들도 다 큰 녀석들과 같이 살려니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서로 다른 음식문화며, 주말이면 늦게 귀가하고 아침이면 늦잠 자는 젊은 층의 생활패턴에, 궁합이 안 맞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던 차에 2주전 주말 저녁에 분가한다며 막상 마지막 짐을 챙겨 차에 오르는 아들을 보니 순간 가슴이 꽉 막히는 듯 허전하며 마음 한쪽 구석이 텅 빈 느낌이었다. 대문 밖까지 따라 나가며 눈물을 글썽이는 집사람을 보며 아들 녀석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빨리 들어가라고 재촉이다. 안사람과 현관문을 열고 어두컴컴한 집안 응접실에 들어서는 순간, 그동안 10년 넘게 살던 집이 왜 이렇게 커 보이고 무겁고 적막한 감정이 드는지 마치 큰 동굴 속의 빈 둥지에 둘만 덩그러니 남은 느낌이었다.
지난 주 한국의 평통 사무처가 결국 오렌지카운티 분회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뉴스를 접할 때 갑자기 분가한 아들과의 마지막 장면이 순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 평통 오렌지카운티 분회는 지역 협의회로 승격 될 것이고 두 협의회는 한 공관 밑에서 활동하게 된다. LA 전체 한인 인구가 5만, 6만이였던 옛 시절에 비하면 작금 20만이 넘는 오렌지카운티는 인구 면에서나, 한 도시의 위상으로 보나 평통 협의회로의 승격에 충분한 조건이 되었으리라.
그러나 막상 분리안이 확정되었다는 신문지상의 소식에 다 큰 녀석을 3년이나 끼고 있다가 떠나는 자식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이 뿌듯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아쉽고 공허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감정은 한국 사람들이 느끼는 정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라는 집단의식으로 길들여진 잠재의식의 발로인지 모르겠다.
이번 오렌지카운티 평통 협의회 승격의 과정에 조그마한 미련은 남아 있는 것 같다. 이번 결정에 주도적 역할을 한 공관과 단체장들이 지역 분위기와 평통 위원들의 의견을 조금만 더 수렴하는 척이라도 했다면 아쉬움은 반감되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LA 평통 간부들이 실망한 이유는 오렌지카운티 평통 분리안 자체보다 결정 과정에서 철저한 비밀 속에서 완전 배제되었다는 사실이다.
같은 동아리 속에서 왕따는 소외감을 낳고 소외감은 분노로 바뀌는 것을 우리 모두가 경험한 일일 것이다. 주장이 관철 안 된 것 보다 믿던 사람에 대한 배신과 실망이, 분노와 좌절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오렌지카운티 지역 분리안의 성공을 위하여 노력하신 오렌지카운티 한인회 및 평통 관계자들의 노고를 치하 드리지만 이번 분리안을 찬성하지 않은 80%가 넘는 LA 평통 위원들의 심정을 헤아리는 지혜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물은 위에서 밑으로 흐르는 것이자 연의 이치이듯 사랑과 나눔도 가진 자에서 못가진 자로 흐르는 것이 삶의 순리가 아닐까. 승자들의 아량이 필요한 시기이다. 앞으로 연이서 일어나는 평통 인선 과정에서도 인선 위원들의 깊은 배려가 필요한 시기이다. 두 마음이 합하고 두 지역이 합하여 남과 북이 합치는 날을 위해 노력하다면 보다 큰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겠는가.
이영송/ 대한노인회 미주총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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