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사협 ‘연합부흥성회’
▶ 김종필 목사 설교요약
지난달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진행됐던 애틀랜타 목사협의회(회장 김영언 목사)주최 ‘연합 부흥성회’는 이제까지 열렸던 집회와 두 가지 의미에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마치 ‘신학도’를 대상으로 한 강의 같은 느낌의 설교로 내용적 측면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3일간 선포됐던 김종필 목사의 설교는 일반성도로서는 언뜻 듣기에 너무나 전문적이고 학문적인 느낌이 강해 전체적 흐름을 파악하기에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설교를 듣다 보면 성경내용적 측면뿐만 아니라 교회사 전체적인 흐름에 대한 언급이 불시에 튀어 나오기 때문에 기본적 지식이 없이는 금새 길을 잃기 쉽다.
두 번째 특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당 300여명이 넘는 참석자를 기록하며 부흥회는 장소가 차고 넘치다 못해, 서서 듣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뜨일 만큼의 호응과 참여 열기로 뜨거웠다는 것이다. ‘무엇이 한인들의 마음을 이토록 움직였던 것일까?’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그 어디가 아닌 바로 김 목사의 설교 속에 들어있을 것이다. 28일 김 목사의 설교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창세기 1장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태초에 천지창조시기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역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도출 되는 개념이 ‘삼위일체’이다. 예를 들어 꽃이 아름다움과 향기를 동시에 가지고 있고, 태양이 뜨거움과 빛을 동시에 가지고 있듯이 하나이지만 각자 다른 인격의 ‘삼위일체’인 하나님이 ‘그들의 형상대로’ 그 이미지를 가지고 사람을 함께 창조하셨다. 성경의 흐름상 구약에는 성부 하나님이, 신약 초반에는 성자 하나님인 예수님이 그리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는 성령 하나님이 일하신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실제로 그 세분은 태초부터 쭉 함께 일해 오셨다는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이 세상을 창조하고 최초의 인간인 ‘아담’을 창조 하셨을 때 그 아담의 신분은 하나님의 ‘대리자’ 였다. 창세기를 보면 에덴동산의 모든 동물들이 아담의 말에 순종했고 또 아담은 그들을 다스리고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내용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셔서 인간에게 모든 권리를 부여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죄를 지음으로써 인간은 ‘대리자’ 자격을 모두 상실해 버렸다.
우리의 구세주로 우리의 잃은 권리를 회복시키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구약성서를 보면 사람에게 기름을 붓는 행위의 유형은 3가지로 나뉜다. 왕을 세울 때, 제사장을 세울 때 그리고 선지자를 세울 때다. 여기서 예수님이 담당하는 왕적, 선지자적 그리고 제사장적 3가지 사역이 도출된다. 처음으로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왕적 사역은 공생애시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고 또 ‘초라한’ 모습으로 사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몰랐다. 그러나 예수님의 왕적 사역은 재림하실 때 도래할 보이지 않는 나라의 시기가 오면 나타날 것이다. 초림의 예수님의 사역이 세상의 것을 버리는 사역이었다면, 재림의 시기에는 그 모든 것을 ‘회복’하는 사역이 될 것이다.
두번째 선지자적 사역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잘 드러난다.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시고 병을 고치고 여러 이적을 행하셨던 예수님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도 구약성에 나오는 ‘선지자’와 같은 존재로서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마태복음 16장에 나오는 제자들의 대답을 통해 알 수 있다. 마지막 제사장적 사역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완성됐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은 모든 민족의 죄를 대신해 제단에 제물의 피를 흘려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중보자’의 역할을 했다. 당시 성막의 지성소는 제사장조차도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만큼 거룩한 공간으로 죄가 있는 인간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장소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스스로가 제단 위의 속죄 ‘제물’이 됨으로써 지성소를 가르던 휘장을 찢으며 그 경계를 허물었다. 그 일로 죄로 인해 하나님을 쳐다 보기만 해도 죽어야 할 만큼 멀어진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이가 예수님을 통해 연결된 것이다. 베드로 전서를 통해 하나님은 ‘오직 너희는 택하신 백성이요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분명히 알려 주신다. 이 내용은 마틴 루터 킹의 종교개혁의 시초가 됐던 반박문의 ‘만인 사제설’의 근거가 되는 본문이기도 하다. 더 이상 우리를 대신해 피를 흘릴 제물이 필요치 않으며, 우리 스스로 제사장이 되어 우리의 ‘중보자’되는 예수님께 고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이 모든 사역을 ‘완성’하시고 승천하신 후 하늘에서 쉬고 계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승천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사역의 시작임을 알아야만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하나님과 우리의 ‘중보자’역할을 지금도 계속 하고 계신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일하시고 계심을 선명히 알려주고 있다.
여기서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찢겼던 성막의 기능을 살펴봄으로써 알 수 있다.
옛 구약시대의 성막에서 지금의 교회로 넘어오며 제물을 죽이고 피를 흘리고 제사를 드리는 기능을 모두 사라졌다. 제사장도, 그리고 제물도 제단도 필요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기능은 ‘분향단’의 기능이다. 그것은 당시 모든 백성들이 자유롭게 향을 피우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장소였다. 그 분향단의 불은 제사의 모든 의식에서 공유 되는 불이기도 했다. 그것은 나를 위한 것도 죄에 관한 것도 아닌 온 백성의 기도였고 이것이 죄 사함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의미하는 ‘중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믿는 그 순간 이미 거룩해진 존재 들이다. 단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리의 죄를 단번에 사하시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예수님을 기억하며 찬양하고 감사하는 중보를 드리는 것이다.
<김은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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