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디지털 카메라는 너무도 낯선 기계였다. 편리할 것 같긴 하지만 왠지 복잡해서 다루기 어려울 것 같았고 막연한 낯설음에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사진을 오래 하신 분들 중에는 디지털은 사진도 아니라는 편견으로 외면하는 분들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 그 후 오랜만에 만난 그분들의 손에도 디지털 카메라가 들려 있고, 예전에 침 튀기며 디지털 카메라를 비하하던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계면쩍어 하는 모습을 본다. 디지털, 이제는 대세이며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변화이다. 디지털 카메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커져 가고 이제는 활용도와 편리함에 매력을 느끼며 생활의 필수 도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카메라에 관하여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은 “어떤 카메라를 사야 하나요?” “비싼 카메라가 좋은가요?” 하는 것들이다. 모두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어려운 질문이다. 카메라를 어떤 용도로 쓰려는지, 카메라에 관한 지식은 어느 정도인지, 사진에 대한 이해와 관심도는 얼마나 되는지 등… 마치 인생고민 상담자가 의뢰인의 신상파악이 다 된 후에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것처럼 대답하기 전에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다.

하지만 우선 결론부터 내린다면 예산에 맞는 기종의 선택을 권한다. 카메라 회사들은 머리 좋은 약은 장사꾼들이다. 절대 소비자가 지불한 액수 이상의 기능은 제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사진이 카메라의 가격과 절대적으로 비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무리하지 않은 예산으로 적당한 기능의 카메라를 선택하여 그 카메라가 가지고 있는 기능의 80% 정도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면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는 준비는 충분하다.

오히려 비싼 카메라가 좋은 사진을 만들어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져본다. 비싼 카메라의 구입을 고려하기 전 혹시 현재 가지고 있는 카메라의 모든 기능들을 숙지하고 있는지? 카메라의 구입 당시 따라온 매뉴얼은 몇 번 정도 읽어 보았는지 생각해 보자.

그 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많은 사람들이 매뉴얼은 카메라와 함께 따라온 액세서리 정도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구입 당시 몇 페이지 들추어 보고 셔터를 눌러보다가 그림이 나오기 시작하면 접어두고 지금은 그 매뉴얼이 어디 있는지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카메라가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 각 제조회사마다 같은 기능이지만 부르는 명칭이 다르고 카메라 바디가 전자화되면서 다양한 기능을 가지게 되어 매뉴얼의 충분한 이해는 필수조건이다.

좋은 사진을 만드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조건들 중 고가의 카메라는 하위권 조건임을 잊지 말자. 찰나의 거장으로 불리며 많은 사진인들로부터 존경받는 까르띠에 브레송(1908~2004)은 50mm의 단 초점 렌즈만을 장착한 35mm 카메라를 사용하여 많은 불후의 명작을 남기지 않았던가? 물론 모든 사물의 과장과 왜곡을 배제한 투철한 작가정신이 낳은 결과이겠으나 크고 비싸고 화려한 카메라를 무리하면서까지 고집하는 오늘의 사진가들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서랍 속에 깊이 넣어두었던 매뉴얼을 찾아 조금은 지나간 듯 하지만 출고 당시에는 신제품이었을 카메라에 활력을 불어넣어 비싼 카메라를 대신해 보자. 진정한 마음이 담기고 이야기가 담긴다면 고가의 카메라로 촬영하여 과장된 포토샵을 통하여 만들어진 그래픽화된 그림 같은 이미지들보다 훨씬 깊이 있는 훌륭한 사진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