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단상-박용진 목사(어스틴 제일 장로교회)
필자네 집 가까이에 시립도서관이 하나 있습니다. 필자의 세 딸들이 이곳을 참 좋아합니다. 이제 갓 유치원에 들어가는 막내가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나 하고 의아해하시겠지만 사실은 거기가면 아이가 공짜로 신나는 만화영화 디비디를 빌려오는 재미로 갑니다. 둘째 녀석은 재미난 어린이영화 디비디를 잔뜩 빌려옵니다. 맏이녀석만 중학생답게 제법 두꺼운 책들을 한아름 싸들고 집에 옵니다. 필자와 아내는 두어 주에 한번씩 애들 데리고 나들이가는 기분으로 그 도서관엘 갑니다. 미국생활이 벌써 9년째 접어들고 있지만 사실 영어책만 가득 차있는 시립도서관은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집에 가면 한글로 된 신문과 잡지만 읽지 영어책을 여간해서 붙잡지 않게 됩니다. 사실 학교와 교회 밖에는 딱히 아이들이 갈 곳이 없는 이곳 생활에서 주중에 하루쯤 가족들이 함께 나갈 수 있는 공간이 하나 생긴 것 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래서 애들은 책보러 도서관가고 필자와 아내는 애들보러 그곳에 갑니다.
그런데 얼마전 그 작은 시립도서관이 무슨 일인지 한달 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대대적인 수리를 한 후 재개관을 했는데 현관부터 아주 산뜻하게 새단장을 했더군요. 그런데 그곳에 예전엔 없던게 하나 생겼더란 말입니다. 일종의 전시공간이라고 할까요. 책장으로 가득차 있던 현관입구의 책꽂이들을 한쪽으로 치우고 서너평 남짓한 공간을 만들어 그 벽면에 미술품을 약 스무점 정도 걸어놓았습니다. 소파도 몇 개 근사하게 가져다 놓았고요. 기껏 2미터너비도 안되는 작은 벽면에 이 지역 미술가들의 작품들을 간단한 설명을 붙여서 예쁘게 단장을 해 놓은 것입니다. 필자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그림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영어로 된 책은 질색을 하는 필자에게 도서관에 와서 할 일이 한가지 생겨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애들이 책을 보고 영화를 고르는 동안 실눈을 떠가며 그림을 하나씩 하나씩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물론 돌아서면 화가이름과 작품이름을 몽땅 잊어버리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참 고맙게도 매달 그 전시물이 바뀌기까지 합니다. 역사자료를 실은 사진전이 열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텍사스 풍경을 담은 수채화전시회가 나붙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 그곳에 들렀다가 필자는 텍사스의 전형적인 봄풍경을 담은 그림 앞에서 한참을 감상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그림 속에는 보라색 블루보넷꽃이 만발한 벌판에 잎이 무성한 오크츄리 한 그루가 외롭게 서 있더군요. 글만 보는 곳을 그림도 함께 보는 곳으로 바꾼 그 지혜가 아름답습니다. 다음달엔 또 어떤 화가나 작가의 작품들이 걸릴지 은근히 기대됩니다. 나중에는 아이들보다 필자가 도서관 가자고 먼저 나설지도 모릅니다.
고정관념을 깨면 새로운 세상이 보입니다. 때때로 물구나무서서 보면 다른 풍경이 보이듯이 말이죠. 주님이 주신 총명으로 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보심이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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