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턴 통신(박현숙 통신원)
10여 년 동안 쉬지않고 매주 한 차례씩 뉴욕 차이나타운에서 꾸준히 열정을 다해 전도를 하여온 김애자 권사(트렌톤 장로교회). 필자도 2년 전 그와 동행을 하면서 살펴보니 김 권사는 그냥 전도지민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연필, 볼펜 등의 학용품과 캔디들을 자비로 구입하여 선물 보따리를 여러 개 마련해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무거운 전도가방을 들고 전철을 타는 것이었다. 김 권사는 차이나타운에 내리기가 무섭게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들고 온 양을 다 소화하자면 시간이 모자란 듯 열정적으로 중국말과 영어로 된 전도지를 선물과 함께 차이나타운의 오고 가는 행인들에게 일일이 나누어주며 ‘지저스 러브즈 !’를 외치는 것이었다.
무엇이 김 권사로 하여금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오랜 세월을 변함없이 이토록 열정적인 노방 전도자로 만든 것일까? 그녀는 1972년도에 두 아이와 함께 미국에 와서 어머니이며 가장으로서 자녀들을 양육하며 생계를 꾸리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갖은 고생을 다하며 살았다고 한다. 평양이 고향인
조부모 때부터 부모와 본인으로 3대에 걸치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해온 김 권사. 그러한 그녀가 정작 예수님을 만난 것은 미국에서 고난의 삶을 통해서였다고 한다. 1남 1녀를 둔 김 권사는 지금도 자녀들을 떠올릴 때마다 그동안 훌륭히 키우도록 축복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과 감사가 절로 넘친다는 것.
아들 토마스는 펜실베니아의 카르손 롱 군사 고등학교 재학 시 학교 역사상 한인 학생으로는 처음으로 학교대표로 뽑혀 하이스쿨 전국 총회에 참석한 자랑스런 기록을 세웠다. 그 후 명문 유펜대학에서 비지니스를 전공하고 현재는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딸 김수미씨는 뉴욕 FIT를 졸업하고 현재 남편과 함께 개인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김 권사는 슬하에 3남 1녀의 손자. 손녀를 두었다.
그녀는 처음에 그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면 열심히 찾아다니면서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구세주입니다.“ 하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12년 전부터 일주일에 두 번씩 기차를 타고 뉴욕 차이나타운에서 전도를 시작했다. 특히 이곳은 얼마나 큰지 수많은 중국 사람들이 있지만 집집마다 우상을 모셔놓고 상점마다 부적과 불상을 차려놓고 있는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멘 콘크리트같이 굳은 중국인들의 심령에 생명의 복음을 넣어주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CWM에서 보내주는 만화 전도지를 가지고 먼저 어린아이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어쩌면 그렇게 아이들이 버리지 않고 열심히 전도지를 들여다보면서 읽고 있는지, 처음에 그들에게 하나님이 누구냐고 물으면 ‘부처’라고 하더니 이제는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김 권사는 그것을 보는 순간 번득 스쳐가는 생각에, 저 순수한 아이들 안에 예수님을 넣어주면 저들이 성장하면서 그 거대한 중국을 복음화하는데 쓰임받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녀는 전에 TV를 통해 빌리그래함 아들이 7백만 달러의 양이 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캄보디아 아이들에게 선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참으로 기쁜 성탄에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후에는 전도지만 주는 것이 아니라 1달러짜리 초코렛도 많이 준비하기 시작했다.김 권사가 초코렛과 함께 어린이 만화 전도지를 주면서 예수님이 너를 사랑하시고 너를 구원하셨으니 꼭 읽어보라고 하면서 주니까 아이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절을 꾸벅하면서 받아가
지고 읽는 것이었다. 이후 김 권사는 미국에 살면서도 중국 대륙을 복음화하는 꿈과 사명감을 가지게 돼 차이나타운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며 열심히 전도해 왔다고 한다.
지금은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국인들 가운데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지금은 주님 은혜로 감사가 넘치는 복을 받고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이 생명 다할 때까지 주의 이름, 예수님을 전하는 이름없는 사명자로 살고 있읍니다.내 뜻대로 산 것이 고통이었고, 내 뜻대로 행한 것이 죄 뿐이었고, 내 뜻대로 생각한 것이 사망의 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님 말씀을 따르고 주님 명령에 순종하면 근심 걱정 모두 물러가고 행복해요.
요즘도 김 권사는 차이나타운 외에 뉴욕 등지에 전철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지 복음지를 들고 달려가 열심으로 구령 열을 불태우고 있다. 언제나 환한 미소와 주님에 대한 사랑과 정열이 넘치는 만년 청년 김 권사. 이런 분들이 있기에 오늘의 한인 이민교회는 아직도 소망과 저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딸 수미씨와 아들 톰과 함께 한 김애자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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