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우리 구역이 식사 당번인 주일, 그 날부터 일회용 식기를 쓰지 않는다고 목사님이 광고를 한다. 교회 식당의 식기를 모두 교체하였다니 설거지를 담당한 남자들이 울상이다. 500개가 넘는 대접과 수저를 닦느라 남편들이 애를 많이 썼다. 사실 일회용 컵이나 폼으로 된 식기는 얼마나 아까운가? 집에서라면 두세 번은 쓸 수 있는 것을 나와서는 더 호기롭게 쓴다. 특히 교회에서는 아끼지 않고 함부로 쓰고 버리는 이들이 더욱 많다. 환경오염 때문에 식기를 교체하였지만 생각 없는 낭비가 미워서라도 절대 찬성이다.
20년도 넘은 오래 전 유학생 아파트에 일본인 부부가 살았다. 포스트 닥으로 와 있는 닥터 구로가와 부부였다. 늦은 유학을 하는 우리 부부와 나이도 비슷하고 같은 동에 살아서 자주 만났다. 마켓에 갈 때마다 헝겊주머니를 가지고 다녀서 내 눈에 매우 촌스럽게 비쳤었다. 장보러 갈 때 후줄근한 망태기를 가지고 다니다니… 선진국민이라는 일본인이 세련되지 못하게… 속으로 비웃었다. 그걸 빼놓으면 어찌나 알뜰하고 교육적인 엄마인지, 버릴 데 없는 여성이었다. 임신 중인 나는 아이를 낳으면 마이꼬 엄마처럼 아이를 키우리라 마음먹을 정도로.
녹색바람이 부는 요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의 오해였다. 미세스 구로가와가 촌스러운 게 아니라 앞서가는 것이었다. 그걸 바라보던 내 시각이 깨지 않고 후진한 거였다. 이렇듯 나의 잣대는 내게는 후하고 남을 향해서는 방자하기 짝이 없다. 우리의 의식보다 적어도 20년은 먼저 지구환경을 염려했던 것이 아닐까?
일터가 일본인들이 많이 사는 가디나시로 옮기는 바람에 일하는 곳과 가까운 일본마켓에서 장을 보곤 한다. 마루카이에 자주 드나들다보니 일본 주부들은 빠짐없이 예의 그 큰 신발주머니 같은 자루를 가지고 다닌다는 걸 알았다. 아침나절 그 주머니만큼의 하루치 장을 보는 듯하였다. 나처럼 카트에 가득 넘치도록 사다가 절반은 버리는 규모 없는 살림을 사는 게 아니었다.
미세스 구로가와의 분신 같은 검소한 차림의 주부들이, 과일도 요리조리 보고 몇 개만 집고 파프리카도 한두 개, 파도 한 단만 사는 것이 아닌가? 그걸 보고 배워서 과일도 박스로 사던 걸 멈추었다. 세 식구 끼니를 준비하며 30명 파티 음식 차리듯 장을 보던 큰 손이, 이젠 담았다가도 다시 꺼내어놓을 줄 알게 되었다.
집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일부터가 환경오염을 줄이는 일일 터이다. 그릇 닦을 때 세제도 조금 쓰고 폼 컵 대신 개인 머그를 쓰는 사소한 마음 씀도 지구에 이바지 하는 일이라니 얼마나 쉬운가? 글로벌한 시대를 사는 지구인이려면 깨끗한 지구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일에 마음을 쓰며 살 일이다. 말이 어려워 그렇지 환경오염이니 환경호르몬이니 녹색혁명이니 이런 것이 주부와 아주 밀접한 일이며 주부가 나서야만 성과를 거두는 일이기도 하다.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나태주 시인의 시 한 구절이다. 지구를 깨끗이 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이, 망설임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일이어서 참 다행이다.
이정아 <재미수필문학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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