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의 격언을 처음 들었을 때, 머리 속에 떠오른 첫번째 생각은 ‘왜 하필이면 사과나무지? 배나무나 포도나무를 심으면 안 되나?’였습니다. 그리고는 혼자서 ‘스피노자가 사과를 무지 좋아했던가 보다’라고 황당한 결론을 내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도 지구의 종말이나, 죽음, 삶 등의 의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렸던 탓일 겝니다.
최근 비디오샵에 들러 순전히 내가 좋아하는 배우 -잭 니콜슨, 모건 프리맨-들이 출연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른 영화가 ‘The Bucket List’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근 30년을 잊고 살았던 그 윤리시간의 기억이 떠오른 것은 이제는 지난 삶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남은 삶에 대한 진지한 계획이 필요한 시기에 도달했다는 자각의 발로였을 것입니다.
‘죽기 전에 꼭하고 싶은 것들’이란 한국어 부제가 붙은 이 영화는 부유하지는 않지만 평생 성실한 남편, 사려 깊은 아빠로서 살아왔던 자동차 정비사 카터(모건 프리맨)와 기업 인수합병 등을 통해 큰 돈을 벌지만 사업과 고급 커피 외에는 관심이 없는 재벌 사업가 에드워드(잭 니콜슨)이 각각 1년 남짓의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고는 한 병실에 입원하면서 시작됩니다. 상반된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지만 우연히 2인용 병실을 같이 쓰게 되면서 공통점을 찾게 됩니다.
병상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카터는 대학 신입생 시절, 그의 철학교수가 과제로 내주었던 ‘버켓 리스트, 즉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을 문득 떠올리게 되고, 낙서하듯 적어봅니다. 하지만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그의 버켓 리스트는 실현성 없는 잃어버린 꿈이 남긴 쓸쓸한 추억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나 쓰레기처럼 던진 카터의 버켓 리스트를 같은 병실에 있는 에드워드가 주워 읽게 되고, 버켓 리스트를 통해 서로에게서 너무나 중요한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남아 있는 1년의 삶 중 먼저 ‘나는 누구인가’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과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내가 하고 싶던 일을 맘껏 다 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한낮 꿈에 불과했던 카터의 버켓 리스트는 에드워드의 돈과 어우러져 현실이 됩니다. 병원을 뛰쳐나가 ‘세렝게티에서 사냥하기’ ‘오토바이로 만리장성 질주하기’ ‘눈물 날 때까지 웃어 보기’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 등등 미리 만든 리스트를 실행하기도 하고, 새 리스트를 추가하기도 합니다. 목록을 하나씩 지워 나가는 동안 두 사람은 많은 것을 나눕니다. ‘화장한 재를 인스턴트 커피 깡통에 담아 경관 좋은 곳에 두기’라는 마지막 버켓 리스트를 실행하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엔 상영관이 16개에 불과할 정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3주만에 상영관이 2,911개로 늘고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를 정도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대형 블럭버스터도 아니고, 매력적인 여배우들이 섹시미를 뽐내지도 않는데, 왜 사람들은 이 영화에 빠져들었을까요? 그것은 인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담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한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못한 것이 아닐까요? 오늘 여러분의 버켓 리스트를 작성해 보십시오. 영화 주인공들처럼 그것을 모두 실행해 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자신의 소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만으로도 실행의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버켓리스트에 ‘다른 이들의 얼굴에 미소 찾아주기’ 항목이 담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요.
박준서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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