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지면을 통하여 코닥크롬의 생산중단 소식을 접했다. 평소 코닥크롬을 많이 사용하지도 않았으면서도 왠지 허전한 마음이랄까?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듯한 마음이다. 코닥크롬, 1935년도부터 생산을 시작하여 사진의 대명사 코닥의 상징적인 필름으로 많은 사진가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슬라이드 필름이다. 저감도의 필름으로 색상이 아름답고 이미지가 곱고 샤프하지만 슬라이드의 필름의 특성상 노출관용도의 폭이 좁아 일반인들이 사용하기 쉽지 않았고 특히 정해진 현상소에서만 현상이 가능해 그다지 일반화된 필름은 아니지만 그 특유의 색감을 자랑하며 이 필름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우월감까지 가졌던 시절이 있었다. 드디어(?) 퇴장… 그 화려했던 옛 명성도 시대의 변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가 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 가지 상품의 그저 단순한 생산중단으로 치부해 버리기는 여러 가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혹자는 아무리 디지털이 발전한다 해도 필름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모를 일이다.
사진에 불어 닥친 디지털의 혁명은 이미 발전이라기보다 진화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정도가 되었다. 매년 눈부신 진화로 인하여 향후 디지털 사진의 변천은 가늠하기조차 힘들어진다. 몇 년 후 과연 사진의 변화가 어디까지 가 있을까 두렵기까지 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기기의 발달이 사진의 존재 가치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사진은 꼭 예술이 아니어도 기록적 가치만으로도 존재 이유가 뚜렷한 것, 이것이 사진이다. 기기의 발달과 진화가 이제는 사진을 법정 증거로서의 채택도 기피하는 못 믿을 증거가치로 평가 절하되고 있고, 보도사진을 대표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편집장이 책 표지의 세로 포맷에 맞추어 피라미드 사진을 변형시켰다가 물러나는 사건도 있었다.
이런 일들은 ‘코닥크롬’ 시절에는 발생하지 않았던 일들이었을 것이다. 시대의 변화를 따르지 못하고 옛 것에 집착하는 것, 이것 또한 현명치 못한 일이겠지만 사진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사진(寫眞)의 사전적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사진, 말 그대로 진실을 베껴내는 일이다. 요즘 인터넷을 통하여 보여지는 멋진 사진들을 본다.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배경의 색상, 눈이 베일 듯한 정도로 샤프한 이미지, 주제를 위해서는 주저 없이 지워버려진 주변 환경, 멀리 보이는 저 산 위에 떠있는 달은 마치 화성에 서서 보는 것처럼 어찌 저리 선명하고 큰지…? 표현예술로서 작가의 의도라고 이야기한다면 별로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사진과 그래픽은 엄연히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사진은 인화지로 옮겨 액자에 넣어야 한다는 조금은 진부한 나의 생각과 뜻을 같이 해주는 주변 동지들이 있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코닥크롬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마이클 잭슨이 우리 곁을 떠난다. 아날로그 시대의 산물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 디지털 기기의 사용은 피할 수도 없고 또 피할 필요도 없겠지만,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사진가들에게는 더욱 절실한 아날로그 작가정신이 요구되는 때인 것 같다. 장발단속을 피해 음악다방 한구석에서 폴 사이먼이 별로 그의 스타일이 아닌 듯한 경쾌한 템포로 불러주던 ‘코닥크롬’을 들으며 발장단을 맞추고, 세상 고통 다 짊어진 듯한 표정으로 생맥주집에 둘러 앉아 마이클 잭슨이 해맑은 목소리로 열창하던 ‘벤’을 들으며 이유 없이 괴롭고 괜히 즐거웠던 아날로그 시절을 회상해 보며 코닥크롬과 마이클 잭슨의 명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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