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잇 넥 통신(박 영숙 통신원)
지난 6월 13일 팰리세이드 교회 강연이 있은 지 불과 2주가 지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멀리 워싱턴 주에서 한 분의 메신저가 다시 뉴욕으로 날아왔다. 현재 워싱턴 주 상원부의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신호범(Paull Shin) 의원이 지난 일요일 롱아일랜드 샌즈포인트에 소재한 롱아일랜드 한인교회에서 본인의 인생여정을 다시 한 번 감동적으로 역설하는 자리를 가진 것이다.
신의원의 당부는 언제나 한 가지, 사랑에 대한 역설이다. 자신을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한 원초적인 가능성은 사랑이라는 사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음을 재차 강조하였다. 4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행방불명이 되자, 외할머니 집에 맡겨진 인간 신호범은
외사촌 동생의 엿을 뺏어 먹었다는 죄로 외숙모로부터 심하게 맞고 6살 때 그만 집을 나와 거리에서 살게 되었다. 춥고 배고픈 것보다 서러움과 외로움 때문에 더 고생했지만, 그 보다 학교도 못 다니는 꿈이 없는 내일 때문에 날로 삐뚤어지고 구겨져만 가던 중, 6. 25 전쟁을 만났으나, 그나마 미군의 손을 잡고 트럭에 올라 새 삶을 만났다.
미군 부대 하우스 보이로 열심히 일했으나 언제나 외롭고 힘든 삶에 눌려 눈물에 젖어있을 때, 전쟁 막사에서 군의관인 폴 대위를 만나 그의 양자가 되어 미국으로 오게 되고 폴이라는 아버지의 이름을 이어 받는다. 꿈에도 소원이었던 공부를 시작해 피나는 고학을 거쳐 대학을 졸업하고 천사같은 다나와 결혼
도 한다. 교수도 되고 박사학위도 받았다. 그리고 한국말과 역사를 배우면서 정계에 들어가 주 하원을 거쳐 상원이 되었고 상원 부의장 자리에 올랐다.
연방 하원이나 부지사 선거에 낙선했고 주한 미 대사에는 마지막 세 사람 중의 한사람으로 올랐으나 쓴 잔을 마셨다. 하지만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도전했다. 후세들을 위한 길을 닦기 위해... 그러면서 그는 꾸준히 앞만 보고 70평생을 살았다.
신의원은 자신이 힘든 상황에서 좌절하고 있을 때, 양아버지가 나의 아들아 내가 너를 믿는다는 말 한마디로 자신의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누구도 자신을 믿어 주지 않았지만 양 아버지의 믿음이 있었기에 내가 지금 여기에 있게 되었다. 사랑과 믿음을 주면 자녀들은 따라 오게 되어 있다.며 자녀들에게도 가장 필요한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신호범 의원은 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꿈과 희망이 생긴다고 말하며 1세들이 2세들에게 많은 사랑을 심어 줄 경우, 아마도 30년 내에는 미국에 한인 대통령이 나올 것으로 확신한다고 역설했다.지난 2008년에는 엘리스 아일랜드 상과 자랑스런 한국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3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하원의원에 당선된 그는 이어 상원의원, 3선 의원이 되면서 부의장직에까지 올랐다. 그는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편 정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2세를 위해 ‘한국
인 2세 정치인후원장학회’를 설립해 적극적으로 돕는 등 한인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2007년 시애틀에서 열린 한 행사를 통해 신호범 의원을 직접 만났을 때의 진한 감동은 다시 뵈었을 때도 여전한 강도로 내게 영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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