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어귀 에코팍(Echo Park)의 호수는 여름철 연꽃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7월 초 부터 9월까지 호수의 반이 넘게 연꽃이 가득 핀 것이 장관이었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연꽃 군락지였다. 무슨 이유인지 지난해와 올해엔 단 한 송이의 연꽃도 볼 수가 없다. 한가롭게 노니는 오리도 더 늘었고 낚싯대를 드리운 이들이 제법 큰 물고기도 낚건만 연꽃의 실종이 의아하다. 로터스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되었다. 1972년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행사여서 연꽃이 없어도 지난해엔 그대로 하였지만, 올해는 이름도 바뀌어 에코 팍 커뮤니티 페스티벌이었다. 연꽃 대신 수초를 가득 퍼다가 군데군데 섬처럼 만들어 놓았는데 운치는 이전에 비해 훨씬 덜하였다.
아이가 어릴 땐 가끔 나가서 워킹 트레일을 걷기도 하고 라티노 행상들이 파는 치즈 바른 옥수수를 사먹기도 하였다. 요즘엔 차를 타고 무심히 지나칠 뿐이다. 토요일과 일요일엔 발로 젓는 오리배를 탈 수도 있는데 늘 타 봐야지 하면서 오늘까지 못 탄 채이다. 서울사람이 창경원 못 가본 꼴이고 뉴요커가 자유의 여신상 못 오른 짝이다. 요즘엔 페달보트 한 시간 빌리는 값이 10달러가 되었다. 5달러일 때부터 타 봐야지 했건만 8달러가 되었다가 10달러가 되도록 타지 못하였다. 그 사이 무려 20여년이 지났으니 나도 참 어지간하다. 이제는 그곳에서 ‘페달보트 타기’를 죽기 전에 해야 할 버킷 리스트(bucket list)에 올려두었다니 아들아이가 웃는다.
일주일 내내 회사 일 하다가 토요일엔 밀린 집안일을 하고 주일엔 교회에 가서 종일 지내는 터라, 주말에만 운행하는 오리배에 승선하기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7박8일 크루즈 여행도 아닌 오리배 타령이 서글퍼 보인다는 친구도 있다. 오리배는 일상의 사소한 여유를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샌타바바라에서 타본 2인용 자전거처럼, 디립다 페달을 움직여야 가는 오리배 타기는 매우 힘이 들지 모른다. 카탈리나 섬에 놀러가서 여자 친구와 오리배를 타 본 아들아이 말이 발로 젓기가 장난이 아니란다. 유유히 떠 있는 우아한 백조가 수면아래서는 쉼 없는 발장구를 쳐야 하듯이 말이다.
그래도 마누라의 소원이 알이 큰 반지라든가 좋은 가구나, 럭서리한 차가 아닌 게 천만다행인지 조만간 배를 태워주겠다고 남편은 선뜻 대답한다. 대학시절 조정부 주장이었던 남편을 기억한다. 큰 키에 근육도 울퉁불퉁하고 건장하였다. 안심하고 배 젓는 일을 맡길 수 있었다. 든든했다. 남편과 나는 청평 호수에서 보트를 젓던 그 때를 상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신혼 때 경주의 보문단지에서 유람선 타던 그 젊은 날을 아직도 추억하는가?
조만간 오리배를 열심히 젓고 있을 쪼그라든 청년과 퍼져버린 처녀를 상상했다. 청년은 오십견으로 팔이 부자유하고 처녀는 관절수술을 하였기로 다리가 불편하다. 배를 타고 에코팍 그리 크지 않은 호수를 건너가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동네 살면서 우리의 젊음도 에코처럼 아득히 사라져갔다. 다른 동네에 살았어도 젊음은 흘러갔을 터이지만 참 오래도록 한 곳에 함께 살았다. 우리도 언젠가는 에코 팍의 연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이정아 <재미수필문학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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