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민씨가 1945년 8월17일 B-29 미군 폭격기가 서울 상공에서 뿌린 대한민국의 광복을 알리는 전단 원본을 보여주며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은호 기자>
“여름 하늘아래 갑자기 하얀 눈이 내렸고 거기에는 대한민국의 해방을 알리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LA에 거주하는 한인 윤경민(73)씨가 1945년 8월15일 대한민국 광복 직후 미군에서 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제작한 삐라(전단)의 원본을 한국일보를 통해 한인사회에 최초로 공개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패망 직후인 8월17일 서울 상공에 뿌려진 이 전단에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의 3개 국어로 ‘한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대한민국의 해방과 이를 위해 미군이 곧 한국에 상륙한다는 내용이 흰색 종이 한 장에 길게 담겨있었다.
윤씨는 “미군 소속의 B-29 폭격기가 나타나 흰색 종이를 뿌렸다”며 “마치 눈이 내리는 것 같은 착시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많은 종이가 날렸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삐라를 읽었다”고 말했다.
한국 점령군인 미 육군 제24군단 사령관 존 하지 중장의 서명이 적힌 이 전단에는 ‘미군이 일본군의 항복을 받기 위해 한국에 곧 상륙할 것이다. (중략) 한국 정부의 재건을 위해 미군이 도울 것이며 이에 대한 성공과 실패는 대한민국 국민의 자발적인 협조에 달려 있다. (중략) 시국이 어수선하지만 동요하지 말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일본군이 철수를 시작하면서 한국 전역에서 치안이 약화되는 등 국민들이 혼란을 겪을 수 있는 만큼 미군이 상륙할 때까지 동요되지 말라는 것이다. 이후 미군은 보름 뒤인 9월8일 인천을 통해 한국에 상륙했다.
당시 혜화동에 살던 소학교(초등학교) 2학년생 윤씨는 일제 치하에서 살았던 사실조차 몰랐을 정도로 일본의 철저한 교육 속에 살았던 탓에 이 전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윤씨는 “집에 와서 부모님께 설명을 듣고서야 학교에서는 일본어를 사용하고, 집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했던 이유를 분명히 알았다”며 “그 만큼 일본은 우리 국민들을 일본의 지배하에 두기 위해 치밀한 교육을 실시했다”며 나라를 잃고 살았던 자신의 처지에 대한 억울함을 나타냈다.
이를 계기로 국가와 역사에 대한 남다른 의식을 갖게 된 윤씨는 이 전단을 포함, 역사 관련 문서의 보관에 사명감을 갖게 됐고 1950년 6.25사변을 겪으면서도 전혀 훼손됨이 없이 소중히 간직, 64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자신의 보물 1호로 보관하고 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64년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온 윤씨는 “시간이 흐르면서 미주 한인, 특히 1.5세 및 2세들에게 부모님의 나라인 대한민국의 역사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며 “이 전단이 공개됨으로써 한인들이 다시 조국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진호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