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늦게 말하고 조금 늦게 걷는다. 그래도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발 맞추어 걸어주는 그녀가 있어서 행복하다.
역경 딛고 목사 2명·전도사 등 탄생
인터넷 통한 고백으로 사랑 결실도
“받은 은혜 이웃을 위해” 장애인 봉사
장애인 봉사단체인 ‘남가주 밀알선교단’(단장 이영선)에는 ‘독수리 5형제’가 있다. 뇌성마비 장애인인 이준수(40) 목사와 조현철(33) 목사, 이정진(37) 전도사, 그리고 구자혁(47) 실장과 이상종(37) 간사가 바로 그 주인공.
모두가 남가주 밀알선교단 장학생 출신인 이들을 사람들은 ‘독수리 5형제’라 부른다. 비슷한 세대로 은근히 닮은 점이 많아서다.
다섯 명 모두 한국에서 성장했지만 꿈을 펼치기 위해 미국에 왔다. 그리고 신학 석사학위를 받은 두 사람은 목사가 됐다. 현재 ‘세리토스 장로교회’(담임목사 김한요)에서 복지사역 담당목사로 일하고 있는 조현철씨는 올해 2월 안수를 받고 ‘미국 내 최초의 한인 뇌성마비 목사’라는 기록을 남겼다.
지난 6월에는 이준수 목사가 남침례교단에서 안수를 받아 ‘제2호’로 이름을 올렸다. 특히 이 목사는 석사 학위만 3개다. UCLA에서 역사학,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에서 신학, 시카고 트리니티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를 받았다. 뿐만 아니다. ‘주님의 빛교회’에서 미디어 담당 사역자로 활동하는 이정진 전도사 역시 현재 아주사신학대에서 목회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반면 구자혁 실장과 이상종 간사는 ‘컴퓨터 박사’다. 남가주 밀알선교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컴퓨터 테크놀로지 부서’에서 실장과 간사로 일하며 선교단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장애인들에게 컴퓨터와 인터넷을 가르치는 등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의 ‘러브스토리’ 역시 닮은꼴이다. 구자혁 실장은 중 학교 때 만난 구명희씨와 6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여 어느새 아들 구본홍씨가 24세가 됐다.
조현철 목사 역시 조선자씨와 대학시절 4년간 연애했다. ‘캠퍼스 커플’이었기에 남다른 추억이 많다는 그는 “스쿨버스를 타고 다니며 데이트를 했고, 서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4학년 때는 둘 다 기숙사에 들어가 밤에 학교 교정에서 만나기도 했다”면서 자랑을 늘어놓았다.
나머지 세 사람에겐 ‘인터넷’이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상종 간사는 인터넷 게임을 하다가 지현주씨를 만나 마음이 통했고, 이정진 전도사는 기독교 홈페이지에서 지금의 아내 이영기씨와 사랑을 시작했다.
이준수 목사는 비록 독수리 타법이지만 ‘한글 600타’의 실력으로 책, 영화, 음식 이야기를 풀어가며 아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 모두 전공이 불어불문학이었다.
이젠 두 살된 쌍둥이 남매의 엄마인 아내 문현정씨는 “처음 인터넷으로 채팅을 할 때는 장애가 있는지 몰랐다”면서 “만나기 전 장애인이라고 고백하면서 보여준 간증문이 주옥 같았다. 역경을 딛고 성실하게 살아온 모습에 감동을 받았고, 한 남자로서의 매력이 충분했다. 남편을 만난 덕분에 삶을 새롭게 보게 됐고 하루하루 진화하며 성숙하는 인간으로 살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이들은 하나 같이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학업을 포기하지 않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자신의 진가를 알아봐 주는 사랑하는 사람도 만났고,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으로 든든한 가장 역할을 하고 있다.
조현철 목사는 “장애인들 모두 잘 할 수 있지만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 다섯 명이 여기까지 온 것은 능력이 뛰어났다기 보다 다른 장애인들 보다 주변에서 기회를 허락하는 사람이 많았을 뿐”이라며 “장애인들에게 기회만 준다면 모두가 잘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최근 LA로 이사온 덕분에 ‘독수리 5형제’를 완성시킨 이준수 목사는 “그 동안 받은 사랑과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 싶다”면서 남가주에 모인 다섯 명이 함께 해나갈 수 있는 일을 구체화 시키겠다는 뜻을 내비췄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지금의 자신들이 있기까지는 부모와 가족, 주변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컸다고 입을 모았다. 가까운 곳에 있었던 그들이 조금 늦게 말하고, 조금 늦게 걷는 자신들을 기다려줬다는 것.
어린 시절엔 엄마 등에 업혀 학교에 갔지만 이제는 아내와 손을 잡고 걸을 수 있어 행복하다는 다섯 남자. 만화 속 ‘독수리 5형제’가 지구를 지켰다면 밀알의 ‘독수리 5형제’는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이들의 활약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김동희 기자>
장애인 봉사단체인 ‘남가주 밀알선교단’의 ‘독수리 5형제’와 이영선 단장이 한자리에 모여 밝게 웃고 있다. 이영선 단장(앞줄 가운데부터 시계 방향), 구자혁 실장, 이상종 간사, 조현철 목사, 이정진 전도사, 이준수 목사(앞줄 맨 오른쪽)와 부인 문현정씨. <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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