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狂服節) 유감
우리 한민족에겐 8월15일이 매우 감격적이고 신나는 날이다. 양력으로는 광복절, 음력으로는 추석이기 때문이다. 금년엔 묘하게도 광복절과 추석이 모두 토요일이다.
올해 8·15엔 본국에서 각종 범법자 150여만명이 대통령사면을 받고, 뉴욕에서는 한인 이민사상 처음으로 광복절 기념식이 어제 뉴욕시청에서 열려 더 감격적이다. 워싱턴주에선 지난주 타코마에 이어 오늘 페더럴웨이에서 또 한차례 광복절 축제가 벌어진다.
광복절은 민속명절 외에 남북한 유일의 공통 국경일이다. 북한은 이날을 ‘민족해방 기념일’로 부르지만 일제통치 36년의 멍에를 벗어버린 기쁨을 기리는 뜻은 남쪽과 똑같다. 남한에선 8·15가 해방에 더해 대한민국 정부수립(1948년)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꼼꼼히 보면 8·15에 대한 남북한의 시각엔 천양지차이가 있다. 남한은 8·15를,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연합국(미국)에 항복함으로써 피 점령지 가운데 하나였던 한국이 국권을 회복한(‘빛을 되찾은’) 날로 규정한다.
북한은, 매사가 그렇듯이, 8·15도 김일성의 은공으로 치부한다. ‘위대한 수령’이 이끄는 조선 인민혁명군의 총공격으로 일본제국이 패망했다고 우긴다. 미국의 원자탄 투하로 일본이 항복한 사실을 부인할 뿐 더러 안중근·윤봉길·유관순·김좌진 등 쟁쟁한 독립투사들의 공적이 김일성의 검증되지 않은 빨치산 전과에 족탈불급이었다며 국민들을 호도한다.
상해 임시정부는 물론 혹독한 여건 속에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벌였던 김구·조만식·이승만·안창호 등 민족투사들을 폄하시키는 이유는 두말할 나위 없이 김일성 우상화 때문이다. 북한은 김일성 사후에도 그의 가문을 미화하기 위해 역사왜곡을 계속해오고 있다.
남한이라고 문제가 없지는 않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를 만들어 광복절을 ‘건국절’로 사실상 대체하려다가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았다. 당시 정부는 민주 대한민국의 출발점이 된 막중한 정부수립 기념일이 광복절에 가려 그 의미가 축소되므로 건국절 기념일을 같은 날짜에 별도로 제정하자고 제안했었다.
문제는 건국일이 언제냐는 것이다. 원래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한 1948년 8월15일을 건국일로 잡고 있지만 헌법전문은 “대한민국 정부는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상해 임시정부는 1919년 4월13일 수립됐고 그해 9월16일 국내외 망명정부들이 이에 흡수 통합됐다. 건국절 제정 움직임이 본격화되자 임시정부 기념사업회를 비롯한 56개 관련 단체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강력 반대했고, 정부는 끝내 계획을 철회했다.
그러나, 광복절의 진짜 문제는 김일성 우상화나 건국절 대체 움직임이 아니라 남의 손으로 이뤄진 해방에 동전의 뒷면처럼 수반된 조국분단이다. 한반도는 일제통치 기간의 거의 두 배인 64년간 허리가 잘린 채 아옹다옹하고 있다. 북한의 해방둥이들은 환갑을 훨씬 넘겨 살도록 ‘빛을 되찾지(光復)’ 못한 채 사실상 식민지 노예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초등학생 때 매년 8·15 기념식에 동원돼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는 광복절 노래를 목청껏 불렀었다. 요즘 광복절에 그런 감격을 갖는 사람은 드물다. 더구나 한인사회의 1.5~2세들에겐 8·15보다 7·4(미국 독립기념일)가 훨씬 더 친근하다.
운 좋게(?) 해방직전에 출생한 필자는 광복절마다 속이 쓰리다. 光復이 아니라 ‘狂服’으로 느껴진다. 죽기 전에 조국통일을 볼 수 있으리라는 60년 묵은 희망이 퇴색해 가는 반면 “기어이 보시려든 어른님, 벗님 어찌 하리…”라는 광복절 노래가 점점 더 실감 난다.
양력 8월15일보다 음력 8월15일이 더 즐거운 이유이기도 하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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