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 잘 알려져 있는 백남준(1932-2006)은 동경대에서 음악을 공부한 뒤 서독으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아방가드르 예술가들을 만나고 파격적인 행위예술을 시작한다.
그는 60년대 팝아트와는 또다른 방식으로 예술과 삶의 간극을 없애려 다양한 예술적 실험을 선보였던 플럭서스(Fluxus)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1959년부터 시작한 텔레비전을 가지고 했던 예술적 탐색을 1964년 뉴욕에 오면서 본격적으로 펼치게 된다.
1967년부터는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과의 행위예술 활동을 하면서 TV로 만든 첼로와 브래지어 등을 사용하면서 대중문화의 대표적 매체인 TV를 예술의 영역으로 들고 온다. 앤디워홀과 같은 팝 아트 예술가들이 코카콜라 병이나 캠벨 수프 깡통의 이미지를 통해 저급예술과 고급예술의 경계를 허물려고 했다면, 백남준은 예술작품을 만드는 중요한 도구로서의 붓이나 물감을 TV로 대체하면서 로버트 라우션버그와 같은 네오 다다 예술가들처럼 회화와 조각 같은 장르 구분의 해체에 가담하게 된다.
존 케이지와의 만남 역시 그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데 기존의 음악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소음이나 적막이 화음이나 멜로디를 대체하는 케이지의 음악적 도발은 백남준의 다양한 예술적 실험에 중요한 영감이 된다.
TV와 비디오 매체에 대한 백남준이 걸었던 기대는 단순히 예술적 실험을 통한 장르의 파괴, 예술과 삶이 하나가 되는 것을 넘어서 1984년 위성TV를 통해 시, 공간을 넘어서 전세계 사람들이 예술을 박물관이나 갤러리가 아닌 안방이나 거실에서 감상할 수 있는 꿈을 실현하게 된다.
1984년 새해 백남준은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 1948년 그의 소설 “1984”에서 1984년은 TV를 통해 대중을 지배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언에서 모티브를 빌려와 뉴욕과 파리, 독일, 한국으로 동시에 위성 TV를 통해 “좋은 아침입니다 오웰씨(Good Morning, Mr. Orwell, 1984)” 라는 영상작품을 방영한다. 그의 예술적 동지들인 케이지와 무어만, 조셉 보이스(Joseph Beuys)등의 많은 예술가들이 파리와 뉴욕에서 동시에 펼친 행위예술이 다원 방송되었다.
대중들이 다가가기에는 난해했던 추상표현주의 등으로 대표되는50년대 예술운동과 결별하고 대중들에게 더 쉽게 다가가려는 노력은 라틴어로 ‘흐름(fluxus; flow)’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던 플럭서스 운동의 예술에 있어서 혁명적 흐름과 파도를 통해 부르주아적인 예술, 즉 추상미술을 없애려는 이상은 백남준이 TV를 가지고 하는 예술적 실험을 열렬히 환영했다.
* 본 글은 알재단에서 매주 화요일 진행되고 있는 미술사 강의 중 일부를 소개한 것이며, 강사 김지혜는 뉴욕 시립대학교에서 미술사 박사과정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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