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꾸사꾸의 마호병
지난 주말 등산길에 ‘니꾸사꾸’의 ‘작꾸’가 열리는 바람에 ‘마호병’이 땅에 떨어져 표면의 ‘멕기’에 ‘기스’가 났다. 꾸려간 ‘아부라게’ 초밥과 ‘오뎅’으로 점심을 때운 후 집에 돌아와 땀에 ‘잇빠이’ 젖은 ‘난닝구’를 벗어 놓고 보니 ‘에리’에 ‘빵꾸’가 나 있었다.
중년 이후의 독자들은 위의 말을 너끈히 이해한다. ‘배낭’의 ‘지퍼’가 열려 ‘보온병’이 떨어졌고 그 표면의 ‘도금’에 ‘흠집’이 났다, ‘유부’초밥과 ‘꼬치어묵’을 먹고 집에 돌아와 땀에 ‘완전히’ 젖은 ‘러닝셔츠’를 벗고 보니 ‘옷깃’에 ‘구멍’이 나있더라는 말이다.
얼마 전 서울의 옛 동료가 이메일해온 ‘일본식 한국말, 일본식 한자말, 일본식 외래어’ 참고자료를 보며 기가 찼다. 필자가 알면서 쓰는 일본말이 많지만 모르고 쓰는 일본말은 더 많았다. 본보 지상에도 그런 일본말들이 숱하게 쓰였을 터여서 낯이 뜨거워졌다.
예를 들어보자. 경제기사에 늘 나오는 매물(賣物, 팔 물건), 부지(敷地, 대지), 매점(賣店, 가게), 매상고(賣上高, 판매액), 인상(引上. 올림), 구좌(口座, 계좌), 잔고(殘高, 잔액), 지분(持分, 몫), 노임(勞賃, 품삯) 등은 모두 일본식 한자말이다. 육교(구름다리), 천정(천장), 입구(들어가는 문), 출산(해산), 노견(갓길), 고참(선임자)도 마찬가지다.
한국말로 굳어진 일본말도 엄청 많다. 곤색(감청색), 미싱(재봉틀), 다대기(다진 양념), 가마니(섬), 구루마(달구지), 축제(잔치), 유도리(융통성), 곤로(풍로), 경품(덤 상품), 시합(경기) 등이다. 우와기(저고리), 오바(코트), 노가다(막노동꾼), 단도리(단속), 뗑깡(생떼) 등이 그런 예이다. “맥주를 한 조끼(큰잔) 마셨다”거나 “오늘 장사는 똔똔(득실 없는 본전)”이라는 말도 일본말이고, 필자가 가끔 쓰는 ‘비까비까’(번쩍번쩍)도 일본말이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는데도 우스꽝스런 일본식 외래어가 입에 붙은 한인노인들을 흔히 본다. 자동차 밤바(범퍼), 보당(단추, button), 다스(다즌, 12개 묶음), 후앙(환풍기, fan), 함박스텍(햄버거 스테이크), 빤쓰(팬티), 베니야(합판), 가다로구(카탈로그), 구락부(클럽), 다이루(타일), 도라이바(나사돌리개, driver), 부레키(브레이크), 빠꾸(후진, 또는 퇴짜), 사라다(샐러드), 쓰레빠(슬리퍼), 뽐뿌(펌프), 캄푸라지(위장, camouflage) 따위이다.
일본어의 표기한계 때문에 뒤틀려진 영어를 그냥 쓰기도 한다. 뼁끼(페인트), 도라꾸(트럭), 도라무깡(드럼통), 스덴(스테인리스), 뻬빠(사포), 빠루(노루발 못 뽑기), 비루(맥주), 바께스(양동이, buckets) 등이 그런 예다. ‘가라오케’는 ‘가짜 오케스트라’의 줄임말로 영어사전에도 올랐지만 우리말의 ‘노래방’이 훨씬 멋지다. ‘돈까스’도 비슷하다. ‘돈(豚, 돼지고기)’에 영어의 ‘카틀렛(cutlet, 얇게 저민 고기)’을 일본식 발음으로 합친 신조어이다. 한국인들이 중국식당에서 즐겨먹는 ‘짬뽕’은 ‘뒤섞음, 초마면’이라는 뜻의 일본어이다.
일본말을 우리말로 대체하는데 앞장서야할 신문조차 구태의연하다. 아직도 ‘구독(購讀)’ 캠페인을 벌인다거나 ‘견습기자’를 모집한다고 쓴다. 본보 편집국장은 서울본사의 ‘사쓰마와리’(경찰기자) 출신이다. 지금도 “미다시(제목)를 단다” “톱기사(머리기사)를 우치카에 한다(갈아치운다)”고 말한다. ‘입을 모았다’거나 ‘즐거운 비명’ 따위도 일본식 표현이다.
우리가 알고 쓰든, 모르고 쓰든, 일본말은 해방 후 60여년간 한국말과 한글 속에 혼재하며 우리의 얼과 문화를 훼손시켜왔다. ‘So what?’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일상의 작은 것에서부터 일본 찌꺼기를 추방하는 것이 진정한 자주와 독립을 이루는 수순일 것이다.
새 학기 시작과 함께 한글학교들이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다. 자녀들의 한국어 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부모들의 모국어 사랑도 마찬가지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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