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이맘때 평양을 깜짝 방문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엉뚱하게 부러웠었다. 당시 세계 톱뉴스가 된 남북정상회담 내용보다 그 회담 후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서 받았다는 송이에 눈길이 먼저 쏠렸다. 필자는 식탐이 좀 심한 편이다.
깜짝방문 만큼이나 깜짝선물이었던 칠보산의 명품 자연송이가 4톤(8,000 파운드)이나 됐다. 청와대는 그 송이를 각계 인사 3,600명에게 나눠줬다. 아마 노 전 대통령 자신도 코에서 송이냄새가 날 정도로 포식했을 것 같았다. 그게 부러웠다.
송이는 다른 버섯과 달리 인공재배가 불가능하다. 30년 이상 자란 소나무 숲에서 9~10월에만 나온다. 그래서 ‘하얀 노다지’로 불린다. 희소가치 뿐 아니라 맛도 일품이다. 날로 구워 먹으면 혀끝에서 살살 녹는다. 송이덮밥, 송이전골, 송이산적 등 다른 요리들도 있다. 속된 말로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맛이 좋다.
약효도 뛰어나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심·혈관 질환의 예방치료를 도우며 위장의 기능을 강화해준다. 특히 항암효과는 모든 버섯 가운데 최고다. 동의보감을 쓴 허준은 “송이는 성질이 평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 큰 소나무 밑에서 솔 기운을 받아 매우 향기로운 솔 냄새를 풍긴다. 모든 버섯 가운데 제일이다”라고 소개했다.
지난주 중부 오리건의 크레센트 산판에서 올가을 서북미 송이 채취시즌이 오픈됐다. 크레이터 레이크 국립공원의 북쪽지역으로 서북미 제일의 송이 명산지이다. 이미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멕시코 계의 직업 채취꾼들이 거의 1,000명이나 몰려들었다.
시애틀 산에서도 송이가 난다는 사실을 필자는 뒤늦게 알았다. 2005년 늦가을 스노퀄미 패스 인근 산을 함께 오르던 여성동료가 우연히 송이군락을 발견했다. 필자도 덩달아 한 개를 캐내고는 펄쩍펄쩍 뛰었다. 알고 보니 수년째 ‘은밀하게’ 송이를 캐오면서도 입을 꽉 다물고 있는 한인들이 적지 않았다. 필자의 아내는 정확하게 1년 전, 그 산보다 훨씬 낮은 이사콰의 타이거 마운틴에서 필자 것보다 훨씬 큰 송이를 캐내고 입이 벌어졌다.
서북미 송이는 20년전까지 파운드당 600달러를 호가했지만 채취꾼들이 많아지면서 25달러 수준에서 적정가격이 형성돼왔다. 중국 송이에 밀려 서북미 송이의 일본 수출이 막힌 3년 전에는 파운드 당 4~5달러까지 폭락했다. 덕분에 끼니마다 송이를 먹었었다. 올해도 일기조건이 좋아 서북미 송이가 풍작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니 기대할만 하다.
서북미 송이가격은 송이 소금구이 1인분에 6만원을 받는 서울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동남아 채취꾼들 덕분이다. 달리 마땅한 직업이 없고 영어도 못하는 이들은 가을 한철 오리건에서 워싱턴주까지 산간을 누비며 1년 생계를 번다. 짐승보다 송이 강도가 더 무서워 법을 어겨가며 총기를 휴대한다. 이들이 목숨 걸고 캔 송이를 우리가 먹는 셈이다.
송이버섯이 주요 외화벌이 자원인 북한 주민들의 처지는 더 딱하다. 가을만 되면 남녀노소 구별 없이 할당량을 받아 산판으로 내몰리지만 정부는 이들이 채취해온 송이를 인건비도 안 되는 헐값에 거둬간다. 그래서 북한주민들은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몰래 두만강을 건너 중국 송이판매상에 판다. 그러다가 발각돼 무자비한 처벌을 받는 사람도 있다.
북한 주민들의 한이 맺힌 그 송이를 김정일은 노 전 대통령에 4톤, 김대중 전 대통령에 3톤(2000년)씩 보냈다. 모 국회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나눠준 송이를 “굶주린 북한주민들 생각에 먹을 수 없다”며 반송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어떤 이유에선지 DJ에게 송이를 반송했다. 식탐 많은 필자도 그 송이를 받았다면(그럴 리 없지만) ‘빠꾸’했을 것이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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