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버지니아로 여행을 다녀왔다.
유명한 쉐난도 국립공원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강과 푸르른 숲이 끝없이 이어진다. 하늘은 높고, 숲이 지어낸 공기는 초록빛이다. 이제 막 가을로 접어드는 계절을 나무들이 어떻게 알아냈는지 쭉 곧게 뻗은 가지 맨 윗부분에만 살짝살짝 단풍 기운이 묻어있다.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히는 스카이라인 드라이브에서 내려다보니 숲 전체는 푸른데도 윤곽을 이루는 라인에는 울긋불긋 손톱 끝 매니큐어 같은 단풍이 시작되었다.
여기는 마치 천국이다! 하고 감탄했던 존 덴버는 이 풍광을 서정적 가사에 실어 노래했다.
‘웨스트 버지니아의 푸르른 산맥과 쉐난도강은 천국에 가까운 곳/ 그곳에서 삶은 나무들보다 더욱 오래되어도 산들바람처럼 자라 산보다 더 젊음이 넘친다네/ 고향 가는 길, 나의 길, 내가 속한 길… 웨스트 버지니아 산은 나의 어머니/ 날 고향으로 데려가 주오/ 그녀에게 얽힌 나의 모든 추억들 푸른 물에 낯선 광부의 여인이 속한 곳/ 어둠과 먼지, 채색된 하늘, 희미한 안개에 싸인 저 달빛, 나의 눈물 흐르는 곳/ 이른 아침, 그녀가 날 부르는 소리, 라디오는 멀리 떨어진 나의 고향을 노래하는데 / 난 길을 따라 운전을 하고 있네 고향에 다녀온 때가 바로 어제인듯, 어제인듯….’
존 덴버도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한때는 자기가 발을 디디고 다녔던 땅을 이제는 하늘 위에 올라가 조감하고 있을 것이다.
가 보니 정말 좋더냐고 묻고 싶은데 한번 간 사람이 돌아오는 걸 본 적이 없다. 가서 누구누구를 만났는지도 묻고 싶다. 이 세상에서 미워했던 사람, 오해했던 사람, 가슴 아프던 사람, 내 마음을 상처나게 했던 사람도 있더냐고. 그러나 거기서는 이 세상 일이 까마득하여 아무 기억도 없이 기쁘기만 하더냐고 묻고 싶다. 엊그제 한 유명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다 보니 천국에 가면 할 일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일 뿐이라고 한다. 그것이 무슨 뜻일까? 천국에 가면 희노애락 감정을 느끼는 시스템 가운데 슬프거나 낙망하는 시스템이 자동 소멸되고 오직 기쁨을 인식하는 신경만 살아남는다는 말인가? 그리하여 경배와 찬양을 올리기 원하는 상태가 지속된다는 것인가? 아니면 천국에서는 이 세상 삶의 유한성을 뛰어넘어 시간의 영원성을 누릴 것이므로 주님 영접하던 순간의 완벽했던 평안이 무한함으로 이어진다는 것인가? 그 강사 목사님은 너무도 바빠서 설교가 끝나자 어디론가 순식간에 사라져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었다.
사고로 스무 살 아들을 잃으신 장로님을 오랜만에 만났다. 그 분의 소원은 꿈에라도 좋으니 한번만 더 아들을 만나보는 것이다. 그날 아침 별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화냈던 일을 사과하고 아빠가 얼마나 너를 사랑했는지 그 말을 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천국에 갔을테니 내가 마음 상하게 한 것쯤은 벌써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 한번만 아들의 어깨를 감싸 안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지요.”
천국, 거기에 갔더니 이 세상 모든 마음 아픔과 육신의 곤고함과 삶의 헛된 수고가 햇빛 앞에 스러질 이슬 같더라고 누가 잠깐만 돌아와서 말해주고 가면 참 좋겠다.
김범수 /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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