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주간
한국의 10월은 기념일의 달이다. 1일은 국군의 날, 3일은 개천절(추석과 겹쳤다), 8일은 재향군인의 날, 9일은 한글날, 21일은 경찰의 날, 24일은 유엔의 날이다. 체육의 날(15일), 문화의 날(17일), 세계 한인의 날(5일), 저축의 날(27일), 교정(矯正)의 날(28일), 노인의 날(2일)에 심지어 임산부의 날(10일)까지 있다. 거의 하루걸러 기념일이다.
천고마비, 중추가절에 기념일이 몰린 건 이해되지만 소위 등화가친의 계절에 독서의 날(또는 독서주간)이 없는 게 이상했다. 필자가 과문한 탓으로 지난해부터 9월이 통째로 ‘독서의 달’이 된 걸 몰랐다. 또 달력에는 표시되지 않았지만 10월11일이 출판업계가 정한 ‘책의 날’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10월11일은 팔만대장경이 완성된 날이란다.
독서의 달이었던 지난 9월 한국에선 정부주관 독서관련 행사만 1,600여 건에 달했다. 시애틀 한인사회에서도 10월 들어 이춘혜 시인의 첫 시집 출판기념회(11일), 한국문인협 워싱턴 지부의 ‘시애틀 문학’ 제2집 출판기념회(24일), 서북미 문인협의 가을 세미나(26일)가 잇달아 열리고 있다. 시애틀은 원래 독서열기가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도시다.
중고교 시절 ‘독서주간’엔 으레 독후감 쓰기 숙제가 따라 붙었다. 대개는 문학 지망생 친구의 모범답안을 베끼기 일쑤였지만 선생님이 지정한 책을 챙기려고 급우들이 평소엔 얼씬거리지도 않던 학교 도서관에 우르르 몰려가고, 거기 없을 경우 먼 길을 걸어 시립도서관에 가서 빌리거나 책방에서 ‘생돈’ 주고 구입하면서 책의 소중함을 터득했었다.
그 땐 책을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을에만 읽는 줄로 알았지만 지금은 얼토당토않다. 집집마다 냉난방이 잘돼 연중 어느 때나 책을 읽는 데 불편이 없다. 오히려 푸른 하늘, 서늘한 바람에 오곡백과 무르익는 가을은 방구석에서 책을 읽기보다는 먹고, 마시고, 놀러 다니기에 더 좋은 계절이다. 통계를 보면 실제로 가을보다 여름에 책이 더 많이 팔린다.
독서는 계절보다는 도서관과 더 밀접하다. 독서 캠페인도 대부분 도서관 몫이다. 인터넷 탐색 란에 ‘독서’라고 치면 전국 방방곡곡 도서관들이 펼치는 독서 캠페인이 쏟아진다. 일제 강점기였던 1925년 독서주간(10월)에 이미 ‘각 도서관 무료공개’라는 신문기사가 실렸었다. 한국엔 현재 3개 국립도서관을 포함해 총 1만1,123개의 도서관이 산재해 있다.
시애틀에도 좋은 도서관이 많다. 워싱턴대학 도서관은 한국학 장서가 많기로 전국에서 손꼽힌다. 뭐니뭐니 해도 시애틀의 자랑은 2년 전 1억6,600만 달러를 들여 신축한 첨단 디자인의 중앙도서관(다운타운)을 포함한 27개 시립도서관이다. 주요 동네마다 들어앉은 시립 도서관의 지난 2007년 총 관람자는 1,160만명, 총 대출도서는 930만여 건이었다.
그러나 이들 도서관에서 한국 책을 찾기란 가히 연목구어이다. 한인들이 많이 사는 린우드, 페더럴웨이, 벨뷰 등 외곽도시의 도서관들도 비슷하다. 더구나 예산부족으로 도서관들이 툭하면 문을 닫는다. LA엔 한인타운 중심에 한인전용 ‘피오피코 시립도서관’이 있다. LA 총영사관 산하의 한국 문화원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한국서적을 쉽게 빌려볼 수 있다.
시애틀 한인들도 희망은 있다. 린우드에서 ‘또또 사랑’ 도서실을 부수적으로 운영해온 샛별문화원이 엄청나게 불어난 장서를 진열하기 위해 건물을 신축하고 ‘한인사회 도서관’으로 공탁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신호범 주상원의원의 주선으로 주정부지원금 30만 달러를 약속받았지만 건축비용으로는 턱도 없어 한인 독지가들의 도움을 기대하고 있다.
한인사회에 번듯한 자체 도서관이 생긴다는 것은 올해 등화가친의 계절에 듣는 최대 희소식이다. 우리 모두 이 계획에 관심을 갖고 성원해 새 도서관의 주인이 됐으면 좋겠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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