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왜 이리 빨리 가는지, 원고날은 또 왜이리 금방 오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원고날이 다가올 때마다 나는 끼니거리 없는 가난한 집에 제삿날 닥칠 때의 심정이 되고는 한다.
얼마전 일이다. “엄마, 나 요즘 자꾸 살이 찌네.” “몇 킬로나 나가는데?” “XX 킬로” “뭐? 몇 킬로?” 곧이어 흥분한 엄마의 목소리를 전화선으로 한참 듣다가 조용해졌길래, 나는 “엄마, 엄마???” 하면서 전화에 대고 엄마를 불렀지만, 엄마는 이미 전화를 끊은 뒤였다. 딸이 살이 찌면 정녕 모녀지간의 인연도 끊고 싶어지는 것일까? 하루도 안 빠지고 운동을 하며 관리를 하는 엄마에게 그날 내 입에서 나온 숫자는 친엄마라도 용서가 안되었던가 보다.
예쁜 둘째가 태어나고 정신 없이 살던 어느 날 아이들과 찍은 나의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은 후 다이어트를 결심했던 십년 전, 십년이라는 세월은 강산도 변하게 만든다는 긴 시간이지만 그동안 나의 몸무게는 변하질 않았다. 지난 십년 동안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었고, 안 먹어본 가루가 없었다. 그 때마다 잠깐씩 변동이 있기는 했지만, 결국 나의 다이어트는 ‘십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인 셈이다.
2년전에 고국방문을 위해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에 정제된 탄수화물을 제한하고 섬유질과 단백질을 주식으로 하는 ‘사우스비치 다이어트’를 해서 비행기를 타기 전 몇 킬로를 감량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비극은 모든 다이어트의 적인 요요현상이 어김없이 또 나에게도 찾아왔다는 것이다.
날씨가 쌀쌀하게 추워지기 시작하는 때였으니, 작년 이맘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무쇠솥에 지은 밥맛이 맛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나는 하얀 김이 모락 모락 올라오는 갓 지어낸 뜨거운 냄비밥을 먹으면서 작년 가을 겨울 내내 참 행복했었다. 그리고 쳐지고 울적해지기 쉬운 비내는 겨울 동안 나는 쉬지 않고 집에서 온갖 빵과 과자를 부지런히 구워댔었고, 집안 가득 퍼지는 갓 구워진 빵 내음에 가족들은 행복해했다. 그리고…… 내 나이 또래의 지인들이 세상을 뜨는 소식을 자주 접하면서 인생 허무하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나하는 다이어트에 대한 회의와 “잘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는 남편의 말에 나의 의지는 완전히 무너졌었다. 그렇게 정신줄을 놓은지 일년이 지나니, 내 존재의 무게는 예전처럼 다시 무겁게 돌아온 것이다.
변명을 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에도 ‘인간은 시련 속에서 강하게 단련된다’는 믿음으로 버티는 나의 낙천적인 성격도 살을 빼고 유지하는데 별 도움이 되질 않는 듯 싶다. 낙천적인 사람이 살이 찌기 쉽다는 리서치 결과도 있으니 말이다. 사는게 힘들고 괴로워도 달콤하고 부드러운 케잌 한조각과 갓 구워낸 따뜻한 빵을 뜯어 먹고 있으면 세상은 그래도 여전히 살만한 아름다운 곳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자본주의 불공평한 경제원리인 ‘빈익빈 부익부’가 살의 세계에도 적용 되는지, 많이 먹어도 살이 안찌고 점점 더 빠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 먹어도 살이 찌고 힘이 들면 마르는 대신 부우면서 살이 되는 소위 ‘저주받은 몸’이 있다. 신진대사인Metabolism 이 낮은 사람들이 그 부류인데, 그렇기에 그들은 더 피나는 노력을 해야한다. 어쨌든 비만은 보기에도 안 좋지만 성인병을 유발하고 건강에도 해가 되기 때문이다.
나도 잘 안다. ‘조금 먹고 많이 운동한다’ 이 방법 말고는 달리 길이 없다는 것을……그래도 행여 쉽고 행복하게 뺄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10년 동안 이런 저런 꼼수를 부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 괴로운 방법 말고는 건강하게 날씬해지기 힘들다는 단순명료한 진리를 결국 깨달은 올 가을, 나는 이 천고마비의 계절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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