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의 자존심 제너럴모터스(GM)가 극심한 경영난으로 2009년 6월 1일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부실 규모는 820억 달러로 미국 파산 보호 신청 기업 중 역대 네 번째였다. 1908년 설립된 GM은 포드·크라이슬러와 함께 ‘빅3’ 체제를 구축하며 세계 자동차 시장을 쥐락펴락했다. 브랜드를 차종과 가격대별로 차별화하는 마케팅 전략에 힘입어 1930년대부터는 포드도 제쳤다. 1954년 미국 시장 점유율이 54%까지 치솟으면서 독과점 문제로 회사를 분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철옹성 같았던 ‘100년 기업’ GM의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는 왜 무너졌을까. 자동차 산업 전환기에 현실에 안주하다 혁신을 내세운 일본 기업에 추월당해 옴나위도 못 할 지경에 빠진 것이 가장 큰 이유다. 1970년대 석유 위기를 겪으면서 일본 기업들은 연비가 뛰어난 소형 승용차를 앞세워 시장을 잠식했지만 GM은 경트럭에 집착하다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GM의 기존 대량생산 방식은 도요타가 선보인 유연한 린(lean) 생산방식을 따라가지 못했다. GM의 1대당 조립 시간(HPV)은 26.8로 도요타의 21.6에 크게 밀렸다.
‘대마불사 신드롬’에 사로잡혀 고임금과 과잉 복지에 집착한 GM 노조도 부실 방조자다. 경영 악화에도 임금 유지는 물론 퇴직자 의료 비용까지 회사가 떠안도록 했다. 2005년 의료보장비로 54억 달러를 지출했는데 이 중 70%가 퇴직자를 위한 비용이었다. GM의 시간당 임금·복지 수준은 74달러로 도요타(48달러)와 현대자동차(40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경쟁이 될 리 없었다. 이에 더해 전미자동차노조(UAW)가 비노조원의 가입 수단으로 회사의 의료 비용 부담을 압박했고 당장의 파업 손실을 우려한 경영진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말았다.
미국 정부의 ‘정책 실패’도 위기를 키웠다. 승용차로 재편되는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를 읽지 못한 채 경트럭 연비 규정을 완화하고 수입 경트럭 보호관세는 3배 가까이 올렸다. 자국 기업의 혁신 의지와 자생력을 스스로 갉아먹은 꼴이 됐다. 결국 GM의 몰락은 산업 전환기라는 중차대한 시점에 회사의 전략 부재와 노조의 고임금 복지병, 정부의 정책 실패가 빚어낸 합작품이다.
지금 글로벌 경제는 인공지능(AI) 대전환의 한복판에 있다.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 산업혁명과 인터넷 혁명처럼 구조적 변화의 물결이다. 혁신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고 현실에 안주하면 퇴출되는 엄중한 상황이다.
중국은 산업 전환기의 코너 구간에서 앞 주자를 추월하는 ‘완다오차오처(?道超?)’ 전략을 구사하며 글로벌 시장을 하나씩 장악하고 있다. 내연기관 자동차에서는 미국과 일본에 밀렸지만 전기차를 내세워 일본을 제치고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가성비 좋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도 한국을 밀어내고 세계 시장을 평정했다. 다음 타깃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메모리반도체로 설정했다.
미국은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라는 당근과 보복관세의 채찍을 휘둘러대며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을 미국 내 공급망에 끌어들이고 있다. ‘이익 분배’보다 ‘성장 우선’ 기치를 내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과감한 규제 혁파로 기업들의 치어리더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도시바 등 일본을 대표하는 30개 기업은 ‘AI 동맹’을 결성하고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AI 시장에 도전장을 낸 상태다.
지금 주요 경쟁국과 기업들은 ‘GM의 덫’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첨단산업 육성과 규제 혁신에 국가 명운을 걸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당정은 노란봉투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상법, 주52시간제, 일률적 정년 연장 등 기업 숨통을 죄는 규제 법안 양산에 열심이다. 관료들은 미래 투자와 성장 동력 확보에 사용돼야 할 기업 이윤과 초과 세수를 현금 복지로 마냥 퍼주자는 빙충맞은 발언을 남발하고 있다. 노조는 정부의 친노동 정책을 등에 업고 ‘우선 곶감부터 빼먹겠다’며 ‘영업이익의 N%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하청 업체까지 가세한 ‘성과급 청구서’로 반도체와 자동차·바이오·플랫폼 등 전 산업이 몸살을 앓는 형국이다.
기업과 노조·정부가 태평몽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산업 전환기에 현실에 안주하다 혁신에 실패해 죽음의 나선에 빠진 GM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금은 흥청망청 이익 나누기 잔치를 벌일 게 아니라 ‘GM 징비록’을 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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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명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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