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을 듣고 있으면 갑자기 대학생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 이유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 작품이 주는 환상… 즉 꿈의 요소 때문인 것 같다. 어린 시절의 나의 꿈은 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당시 집이 건국 대학교 캠퍼스 옆이었는데 수업을 마치고 퇴근하는 교수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딘지 여유롭고, 성공의 상징 같은 것이 느껴져 오곤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만해도 교수란 존경 받는 직업이었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곳 미국에 와서 그 꿈을 접게 되었다. 우선 머리가 따라주지 않았고, 칼리지 교수란 게 여간 피곤한 직업이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뭐 돈도 그렇게 많이 버는 직업이 아닌 것 같고. 그래서 여지껏 이렇게 살아오고 있다. 물론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고, 플라톤의 아카데미에 대한 이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삶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 하나의 대학이요, 배움의 터요, 사색의 장이지 않는가.
꿈…. 참 아름답고 좋은 단어다. 그러나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당신은 진정으로 가슴 아픈 꿈을, 혹은 진정으로 소망하는 꿈을 가져본 적이 있느냐고? 솔직히 고백컨데 없었던 것 같다. 학자가 되어 보겠다는 꿈?… 그것이 거짓 꿈이었다는 것을 아는 데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진정한 꿈이란 심장을 멈추게 하고 자신을 삼켜버리는 그러한 꿈을 말할 것이다.
괴테는 말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괴테가 말하는 눈물 젖은 빵이란 어떤 것일까? 돈일까, 아니면 베르테르의 슬픔(사랑)같은 것일까? 아니면 정말 자신을 삼켜버리고도 남을 꿈… 환상을 말하는 것일까? 인생은 깊은 골짜기의 처절한 절망 속에서야 비로소 높은 이상을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왜 베를리오즈의 음악을 들을 때면 설레는 가슴으로 뛰곤 했을까? 아마도 베를리오즈야말로 우리가 소유하지 못했던 절망… 그 꿈을 가졌던 용기 있는 청년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은 참으로 많은 에피소드가 전해져 오고 있는 데 그것은 제목 그대로 환상(꿈)을 주제로 한 것이어서 더욱 신비감을 더해 주고 있다.
1830년 ‘환상교향곡’이 발표되자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는 ‘베토벤이 다시 되살아났다’고 외쳤다고 한다. 베토벤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사실은 베를리오즈(1803-1869)를 통해 되살아나기 위해 죽었다고 경탄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세상을 놀라게 한 작곡가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피아노도 칠 줄 모르는 얼치기 아마추어 작곡가에 불과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여전히 수수깨끼로 남아있는 환상적 과제이다.
당시 24세였던 무명 작곡가 베를리오즈에게 삶의 전환점을 돌게 하는 큰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파리를 찾은 한 아일리쉬 여배우에게 빠진 것이 그것이었다. 해리엣 스미스슨이라는 금발의 푸른 눈 여배우에게 베를리오즈는 구애 편지를 여러 번 보내 보지만 답장이 올리 만무했다. 부와 명예, 외모 중 베를리오즈는 하나도 유리한 조건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베를리오즈는 남에게 없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그것은 꿈이 있는 자의 행복이었다. 이 우스꽝스런 한 젊은 음악도의 열정은 사랑을 연결시키는 데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지만 베를리오즈라는 음악가의 잠재력을 발견하는 데는 크게 기여했다.
베를리오즈의 두상은 사진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올빼미 형에 보통 사람의 한배 반 크기(좀 과장하면)의 기형이었다고 한다. 이 해괴한 가분수는 그러나 그 머리통 속에 담긴 뇌의 크기만큼이나 상상력도 컸던지 피아노 없이도 작품을 연상해 내는 괴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즉 자기의 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해 볼 재주는 없었지만 오선지에 옮길 수 있었던 능력, 사실 따지고 보면 베토벤도 자신의 음악을 잘 들을 수 없었기에 마찬가지였겠지만, 이 특이한 작곡가는 당대 어느 음악가도 할 수 없었던 위대한 상상력으로 유럽 최고의 권위 로마 대상을 거머쥐는 쾌거를 거두게 된다.(1833년에는 그렇게 소원하던 여배우와의 결혼에도 골인한다.-비록 7년을 넘기지 못하지만-)
1828년에 작곡, 1830년에 초연을 본 이 작품(환상교향곡)은 악보 표지에 ?사랑에 번민하던 한 예술가가 격정을 참을 수 없어 약을 먹고 죽으려 한다. 그러나 약의 분량이 적어 꿈을 꾸며 무서운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고 적고 있다. 5악장 형식으로 ‘꿈’, ‘무도회’, ‘전원의 풍경’, ‘단두대로의 행진’, ‘마녀의 밤잔치’ 등의 표제가 붙어있다. 놀라운 오케스레이션, 탁월한 음색, 극적인 표현 등은 베를리오즈에게 표제음악의 창시자란 칭호를 수여했으며, 유럽이 떠들썩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성경에 보면 천국과 겨자씨에 대한 비유가 있다. 겨자씨는 작지만 자라서 큰 나무가 되면 많은 새들이 깃들고, 사람들이 찾는다고 했다. 베를리오즈의 꿈은 어떤 것이었을까? 전해오는 이야기는 베를리오즈의 사랑이 열정과 작품을 낳게 한 것처럼 적고 있지만 사실 더 위대했던 것은 자신의 체험을 작품으로 옮겨 놓을 수 있었던 베를리오즈의 기지(상상력)였다. 꿈은 겨자씨처럼 작은 것이지만 자라면 우주도 감싸 안을 수 있는 놀라운 가능성을 낳는다.
학창시절 진정한 꿈은 없었지만,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꿈을 체험하는, 인생에 대한 푸르른 사건이었다. 당신도 오늘 꿈을 향해 나아가는 행진,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통해 그 꿈의 승리를 한번 체험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성경에도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라고 했는데…
<이정훈 기자> jungmus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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