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나온 길 무진 아득하고 나아갈 길 더욱 아득해도
창간 20주년 미주현대불교 김형근 발행인-김지영 변호사 심층인터뷰
김 발행인, 대륙 넘나들며 연중 석달 가까이 외근
김 변호사, 편집기획 행사진행 등 위해 수시 야근
전파매체와 인터넷매체 등장으로 인쇄매체들이 줄줄이 된서리를 맞았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영세 매거진들이다. 타임지나 뉴스위크지 등 세계적 권위지들까지 곳간사정이 빡빡한 터에 군소매체들 사정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최근 2,3년동안에는 SF크로니클지, SJ머큐리뉴스지 등 대형 일간지들마저 눈덩이 적자에 줄줄이 파산직전 벼랑으로 몰렸다.
기독교의 땅 미국에서, 주류사회도 아니고 한인사회에서, 종합일간지도 아니고 불교월간지가 20년을 버틴다는 건 거의 기적이다. 20년 생존 이전에 태어난 것 자체가 예삿일이 아니다. 월간 미주현대불교 얘기다. 1989년 10월 고고지성을 울린 미주현대불교는 모진 눈보라 속에 능히 20년을 견뎌내고 새로운 20년, 50년을 향해 처음처럼 설레는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흑자니 돈벌이니 하는 게 목표는 아니지만 지레 깎고 조인 최소예산의 수지균형을 미주현대불교는 단 한번도 맞춰본 적이 없다. 매체의 생멸을 좌우하는 건 시장이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가혹하다. 좋은 내용 봐주고 궂은 내용 내치는 게 아니다. 시장의 작동원리, 즉 장삿속 셈법에 따를 뿐인 그 매서운 손은 매번 미주현대불교의 목을 조인다. 앞으로 낙낙해지리란 보장은 없다.
그래도 미주현대불교는 미주현대불교의 길을 간다. 지난달 중순 LA를 시작으로 워싱턴DC와 뉴욕에서 잇달아 열린 창간 20주년 기념행사를 마치고 수북이 쌓인 일 앞에 다시 앉아 허리띠를 더욱 졸라맨 김형근 발행인과 부인 김지영 변호사로부터 미주현대불교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일부는 문답식으로 일부는 풀어쓰는 형식으로 정리한다.
-미주현대불교는 대형사찰이나 돈줄 든든한 재단의 후광을 업고 출발한 게 아니다. 미주 한인사회에, 나아가 미국에 부처님법을 전하리라는 유학생 출신 젊은 부부(김형근 발행인과 김지영 변호사)의 서원으로 태어났다. 부부는 어느덧 중년이 된 지금도 발행인과 편집위원으로 미주현대불교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누구일까.
▲김형근 발행인은 전북대학교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1984년 미국유학을 왔다. 뉴욕시립대를 다니다 포기하고 1986년부터 뉴욕원각사에서 ‘원각’이라는 회보를 만들며 불교공부를 했다. 1987년부터 6-7년동안 뉴욕주립대 스토니부룩 한국학과 설립운동을 하는 ‘스토니부룩 한국학회’ 사무국장으로 일을 했다. 1989년 10월 미주현대불교를 창간하고, 1990년부터 송백출판사를 운영하여 디자인과 인쇄일을 겸하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뉴욕에서 한인봉사단체로는 가장 큰 ‘KCS 뉴욕한인봉사센터’에서 15년동안 이사로 봉사하고 있다. 지금은 재무이사다.
김지영 변호사는 연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1987년 미국유학길에 올라 미시시피주립대에서 영문학 석사를 받고 뉴욕시립대 법대를 졸업했다. 뉴욕과 뉴저지주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현재 뉴욕 플러싱에서 김지영변호사 사무실을 운영중이다. 그는 연세대 재학시절 영자신문 ‘연세 애널스 (The Yonsei Annals)’ 기자와 편집인을 역임하면서 체화한 기자적 감각까지 살려 미주현대불교의 편집방향 설정과 주류인사 인터뷰, 기사 및 법문 번역 등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김형근 발행인과 김지영 변호사는 중학교 2학년생 아들 한명을 두고 있다.
- 둘의 인연맺음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김지영 변호사는 원래 기독교 신자였는데, 유학시절 학교 기숙사에서 악몽을 꾸거나 가위에 눌렸을 때, 자신도 모르게 ‘관세음보살’을 부르거나 꿈속에서 스님이 나와 구해주었다. 한 번은 죽은 김지영 변호사를 여러명의 비구니스님들이 상여에 얹어놓고 장사를 지내는 꿈을 꾸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샴발라출판사에서 출판한 불교책 등을 읽으며 불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그후 김지영 변호사는 플로리다에서 3명의 불교신자 친구들과 함께 산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 중 한명에게 미주현대불교가 배달되었다. 김 변호사는 그 책의 애독자가 되었다. 그 책을 받아보던 친구가 뉴욕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김 변호사도 몇달 후에 친구 따라 강남간다는 속담처럼 그 친구를 따라 뉴욕으로 이주했다. 김형근 사장이 뉴욕으로 이사한 친구에게 절을 소개하여 친구가 그 절에서 렌트로 살았기 때문에 김 변호사도 뉴욕에 처음 와서 그 친구와 같이 절에서 얼마간 기거했다. 이런 과정에서 1996년 두 사람이 만나게 되어 1997년 3월에 결혼했다. 만나서 결혼하고 살다보니 부처님께서 중매한 것으로 두 사람은 생각하고 있다.
- 미주현대불교 창간 동기는? 창간준비 당시 미주 한인사회의 불교소식지 현황은?
▲1986년 뉴욕 원각사에서 발행하던 ‘원각’회보 편집인으로 일하면서 불교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이 생에서 만난 불교와 인연이 아주 지중하게 생각되었고 불교와 인연을 깊게 하고 싶었다. 원각사 사정으로 ‘원각’ 발행이 중지되었는데 이 활동을 하면서 미주한국불교계 상황을 파악하는 동기가 되었다.
당시 미주한인불교계에서는 미국불교계 소식은 물론이거니와 미주한국불교계의 현황을 아무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인터넷도 없었고 신문이나 잡지 발행은 사식기로 작업을 해야 하고 손으로 편집을 해야 하기 비용이 많이 들어 하기가 힘들었다. 불교계에서는 불교방송이 1979년 3월에 LA 관음사 도안스님에 의해 일주일에 한 시간씩 KBC 방송망을 통해 3년간 방송되었다.
인쇄매체는 1985년 3월에 하와이 대원사에서 발행하는 ‘대원’이 월간으로 약 2년 정도 발행되었는데 미주불교계 소식보다는 대원사 소식을 주로 하는 대원사 회보였다. 하와이 지역에 배부되었고 본토에는 일부 사찰에만 배달되었다. 그 외에 LA관음사에서 주보를 발행하였고 나머지 사찰에서는 주보도 발행하는 곳이 거의 없는 실정이었다. 미주현대불교에 앞서 ‘불교신문’이 월간으로 나오기는 했으나 본국에서 발행하는 불교신문에 미국판을 한 페이지 붙이는 형식이었고 내용은 발행하는 스님과 사찰행사로 보도되어 별반 특기할 점이 없었다.
1990년대 초에 서부에서도 도안스님이 서부판 ‘불교신문’을 발행하다가 몇달만에 문을 닫았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잡지 발행을 위한 사찰과 신행단체, 스님과 지도자들 등 모든 기초자료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1989년 초부터 6개월에 걸쳐 캘리포니아, 시애틀, 하와이 시카고, 워싱턴DC 지역등을 다니면서 자료 수집도 하고 잡지발행의 필요성을 설명하였다.
- 초기 미주현대불교의 모습은?
▲처음에는 격월간으로 3번 6개월을 발행하였다. 원고를 모아 서울로 보내면 서울에서 편집과 인쇄를 하여 미국으로 보내오는 형식이었다. 현재의 크기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로 약 70페이지였고 미주 한국사찰과 한국인 불자들 소개, 그리고 타민족 사찰 소개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교리 외에는 원칙적으로 미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필자로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필자를 선정하였다. 4호부터는 미국에서 제작하였는데 매켄토시 컴퓨터를 구입하고 사람을 구해 타이핑 연습을 시키면서 편집 일을 하였다. 1991년 9월호까지 완전 흑백인쇄였고 그후 표지만 칼라로 되었다. 그러나 미주현대불교가 나오면서 비로소 미주한국불교 현황이 파악되고 미주불교계 소식이 한국불교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 미주현대불교 유지에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언론이라는 것은 각계각층의 여론을 반영하는 것인데 미주한국불교계에 대해 발전을 위한 비판적인 여론에 대해 스님들이 아주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비판적인 여론을 거의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문제로 스님들과 갈등관계가 발생할 때 가장 힘이 든다. 또 지금 추세가 인쇄매체가 고전을 하는 시기여서 구독자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 미주현대불교를 발행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은?
▲미주현대불교가 현재 미주한국불교권을 한 데로 묶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미주현대불교의 캘리포니아, 뉴욕, 워싱턴DC, 텍사스 등 여러지역과 타민족 불교활동 보도를 통해 미국에 사는 한국불교인들이 한인사회에서 갖는 종교적으로 소수인이라는 위축감에서 벗어나고 심리적인 연대감을 형성시킨 것은 미주현대불교가 내세우고 싶은 점이다. 이 외에도 1990년대 초에 남북불교교류에 큰 역할을 하였고 미국불교계 현황을 한국불교계에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것도 보람으로 느낀다.
- 독자현황, 재정상태, 직원분포, 그밖의 활동 등 미주현대불교의 현재 모습을 보다 상세하게 소개해달라.
▲발행은 3천부를 하지만 구독료를 내는 사람은 천명 조금 넘는다. 3백명 정도 유료 구독자가 증가되면 적자를 면할 수 있겠다. 후원회가 뉴욕, LA, 워싱턴DC, 북가주에 있다. 올해안에 텍사스 지역에 후원회가 결성될 예정으로 있다. 일 년에 필요한 예산은 30만 달러인데 지난 2년간 수입은 20만 달러였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인건비를 제대로 주고 못하고 자원봉사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매달 책이 나오려면 약 20명의 필자가 동원되는데 취재기자가 7명, 번역이 4명, 고정필자가 6-7명 정도 된다. 취재기자들에게는 대개 교통비 정도 지급하는 자원봉사 성격이고 편집은 파타임 디자이너를 한명이 한다. 책 발행 외에 Daum에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카페를 전담하는 사람이 한명 있다. 그리고 매년 해온 행사로는 워싱턴DC에서 미연방수생식물원과 공동으로 주최하는 ‘연꽃과 아세아 문화축제’거 있다. 이 행사는 미주한국불교계에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유일한 문화행사다.
- 북가주 한인불자들은 물론 미주 한인사회 불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미주한인사회에서 불교인들이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특히 사찰이나 신행단체는 지역사회의 크고 작은 일에 참여해야 한다. 지역사회에 참여하지 않는 사찰은 그 지역에서 크게 성장할 수가 없다. 불교적인 수행도 하면서 동시에 미국사회와 한인사회에서 벌어지는 글로벌 이슈, 각종 봉사활동, 문화운동, 환경운동 등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북가주는 미국불교의 중심지역이다. 그러나 한국불교계는 미국불교계에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불교적 가치관이 우리 시대에 아주 적합하다는 확신을 갖고 자발적으로 포교에도 적극 나서서 북가주에서부터 한국불교의 위상을 높이는 일을 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 김 발행인은 출장만 해도 상당할텐데 1년에 며칠정도 집을 비우는지, 김 변호사는 ‘돈 안되는’ 미주현대불교를 살지게 꾸리기 위해 ‘돈 되는’ 변호사 본업까지 상당부분 희생시키고 있는데 하는 일을 상세하게 소개해달라.
▲김형근 발행인은 매달 최소 한번은 비행기로 가고 있다. 한국에는 매년 일년에 3-4번 가고 있다. 미국내에서는 주로 주말을 이용하여 다니지만 워싱턴 DC 등 차로 가는 것을 다하면 일년이면 80일 정도는 출장을 간다.
김지영 변호사는 전에는 거의 매달 정기적으로 번역과 취재기사를 기고하였으나 요즘은 일 년에 3-4회 정도 미국인들을 상대로 취재, 인터뷰 기사를 기고한다. 이제는 연꽃축제 등이 자리를 잡았고 김 변호사가 개업을 하였기 때문에 2년 전부터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김 변호사가 번역 업무를 많이 보지 않으므로 요즘 미주현대불교의 번역일은 외부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 김 변호사의 기사 관련활동이 줄어든 것은 7-8년 전에 김 변호사와 자주 만나던 미국불교계의 주요 인물들이 요즈음에는 활동을 많이 하지 않는 까닭도 있다.
그러나 서류나 편지 등의 일을 하여야 하고 각종 미주현대불교가 주관 또는 협찬하는 행사의 준비와 뒷처리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평균잡아 김 변호사가 미주현대불교에 할애하는 시간은 한달에 15시간 정도는 될 것이다. 또한, 김지영 변호사는 10년 이상 매달 하루는 발송작업을 맡아서 하고 있다. 미주현대불교에 게재하기 위하여 번역하는 책이나 글들을 결정하는 일도 주로 김 변호사의 몫이다.
미주현대불교는 청소년 들을 대상으로 작년(2008년)에는 3박 4일 올해(2009년)는 4박 5일 등 2년간 ‘명상캠프와 템플스테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김 변호사는 이 행사운영의 실질적인 총괄책임자로 행사기간 내내 통역을 담당하는 등 열성적이고 헌신적으로 활동하였다. 앞으로 현재 운영하고 있는 변호사 사무실이 좀 더 안정되면 불교관련 일을 더 많이 하고 싶은 것이 김 변호사의 희망이고 계획이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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