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아무에게나 다 이지러진 또 한 해였지 싶다. 다들 구겨지고 찌든 마음으로 흔들리며 흔들리며, 잘 버텨왔다. 정말 상 받아 마땅할 ‘당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없이 멀쩡한(?) 사람들이 죽기도 전에 먼저 죽은 사례도 꽤 된다. ‘오죽하면’인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제발, 그 음산한 ‘죽음의 굿판’을 거두었으면 좋겠다.
시인 도종환은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느냐고,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다고,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다고 마구 꾸짖는다. 시인은 또 이렇게 어르기도 했다.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흔들리며 피는 꽃’ 중에서)
이 해도 도리 없이 이지러지는 즈음이다. 해 뜨면 지는 줄 알고 해 지면 뜨는 줄 알지만, 공연히 흐르는 세월에 금 그어 놓고 묵은 해다 새해다 한 것은, 역경을 건너는 사람들에게 심기를 다잡아, 실답게 다시 시작해 보라는 선현들의 애틋한 배려일 것이다.
요즘처럼 팍팍하고 마음 가문시절, ‘역경지수’ 즉 AQ (Adversity Quotient)라는 용어가 시의적절하게 골골마다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역경지수는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폴 스톨츠가 저서 ‘역경지수, 장애물을 기회로 전환시켜라’에서 발표한 개념이다. 그는 역경지수란 강인한 의지와 인내심으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목표를 성취하는 능력이라고 했다. 또 역경지수가 높은 사람의 특징을 자신이 역경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굳게 믿는 긍정성이며, 결코 자신을 비하하거나 남을 비난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스톨츠는 역경지수를 설명하면서 세 가지 유형으로 난관에 대응하는 등반가의 자세를 비유로 들었다. 첫 번째 유형은 역경지수가 제일 낮은 이들로, 난관에 부닥쳤을 때 쉽게 포기하고 내려와 버리는 사람들인 퀴터(quitter), 다음은 그 난관을 극복하려는 노력보다 적당한 곳에 텐트를 치고 안주하려는 캠퍼(camper), 마지막으로 끝까지 난관과 장애를 극복하여 정상을 정복하려는 유형인 클라이머(climber)라고 했다. 물론 클라이머의 역경지수가 가장 높다. 찰스 다윈 역시 그의 저서 ‘종의 기원’에서 ‘결국 살아남는 종은 강인한 종도, 지적 능력이 뛰어난 종도 아니다. 그것은 역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라 했다.
그러니 이제는 역경지수를 높여야 살아남는 세상이다. 또한 역경의 이면에는 난관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사람을 연마시키고 겸허하게 만드는 순기능도 있다.
절집에서도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교만해 지나니.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고 한다. 따라서 역경은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기회라 할 수 있어 ‘위장된 축복’이라고도 불린다.
아무튼 어떤들 우리는 살아 있어 꾸역꾸역 살아가야 한다. ‘생명’(生命)이란 살라는 우주의 명령이라 했다. 그래서 그 지엄한 명령 받자와 살아야 할 산자여! 이 해의 끝 달을 밟고 한바탕 크게 웃어 쌓인 신고부터 털자.
‘휘영청 달이 밝아 강산은 고요한데/ 터지는 한 웃음소리 천지가 기겁한다.’
박재욱 (나란타 불교아카데미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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