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이 끝나면 전쟁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했던 인류의 소망과는 달리 테러와 반 테러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2009년에도 지구상에는 평화가 없었다. 테러나 분쟁이 주로 아프리카나 중남미,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것에 비해 최근에는 선진국이나 대도시 한복판, 어디서나 일어 날수 있다는 공포감이 확산되는 가운데 반 평화(反 平和)는 이제 지구의 일상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역시 압권은 9.11테러에 맞서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테러 전쟁이었으며 오바마 대통령이 이 전쟁을 ‘정의로운 전쟁’ 이라고 규정하면서 ‘전쟁과 평화’에 대한 해묵은 논란이 거세지고 있는 중이다.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전쟁이란 것 자체가 사람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고 남을 죽이자면 어차피 이쪽도 죽임을 당하기 마련인데 인간을 살육하는 전쟁에 도대체 ‘정의로운 전쟁’이 있을 수나 있느냐는 것이다.
그 자신 ‘정의로운 전쟁과 정의롭지 못한 전쟁’이란 책을 쓴 적도 있는 프린스턴 대학의 마이클 윈저 명예교수의 이야기는 단호하다. 그는 “아프간 전쟁에 자발적으로 참전하겠다는 사람의 숫자가 적은 것만 봐도 아프간 전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정당치 못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남의 땅에 가서 수많은 인명을 살상시키며 전쟁을 치르는 것은 용납하가 어려운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보수논객들은 “오바마의 연설은 미국의 가치와 기질을 드높인 승리감의 표현이었다”고 극찬하는가 하면 그동안 오바마 흠집 내기에 앞장서온 공화당 중진들은 미국을 악에 대한 선의 세력으로 언급한 것은 과거 불량국가의 지도자들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공격하였던 부시 대통령의 정책과 같은 것이라며 때 아니게 오바마를 한껏 치켜세우고 있다.
세계 평화는 인류의 염원이지만 인간에게 이제 분쟁을 억제할 능력은 없어진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여전히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테러와 반테러를 목격하면서 대량학살의 시대는 지나갔다 하더라도 “남이 하는 것은 불의의 전쟁이고 내가 하는 것은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우기는 한 세계평화는 요원하다는 절망감에 빠진다.
그런데 절망의 끝자락에 희망도 있는 것인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어가며 미래의 실적을 담보한 노벨위원회의 원려는 희망일 수도 있다. 가까이로는 지난번 스티븐 보즈워스의 방북에 이어 내년 초에 있을 2차 북미 고위급대화에서 한반도 문제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남쪽에서 178억원어치의 신종 플루 치료제를 북쪽에 지원한 것은 남북 관계에도 긍정적인 신호로 보인다.
사무엘 베케트의 유명한 작품으로 ‘고도를 기다리며’ 라는 희곡이 있다. 작품의 주인공인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기다려도 기다려도 ‘고도’는 오지 않는다. 주인공들이 그를 기다리는 사이 많은 말을 하지만 그 대화는 전혀 논리적이지도 않아 그들 자신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무슨 행동을 하는 건지 종잡을 수 없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세월의 고비를 지날 때 마다 사람들은 많은 소원을 말하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기다린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신의 도움을 갈망하기도 하며 경제적인 삶이 개선되기를 학수고대하기도 한다. 전쟁과 분단과 독재를 체험한 한민족에게는 특히 평화가 간절한 소망이다.
“이 둥근 세계에 평화를 주십사고 기도하지만 가시에 찔려 피나는 아픔은 날로 더해 갑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왜 이리 먼 가요”
이해인 수녀의 간구가 다시 귓전에 남는다. 그렇다. 우리에게 평화는 ‘고도’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화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새해에는 우리 스스로가 남을 배려하는 평화적인 삶에 더 한층 익숙해져야 한다.
김용현 / 한민족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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