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이 밝았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떠오르는 단어가 ‘라스트(마지막)’라는 낱말이다. 아마 묵은 해를 보내는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라스트’ 어딘가 좀 비장함이 전해져 오는 낱말이기도 하다.
이 ‘라스트’에 대해 음악 이야기를 하자면 심포니(교향곡)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라스트 즉 10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숫자 9번에서 수많은 교향곡 작곡가들이 사망해 버렸기 때문이다. 베토벤이 9번을 남기고 사망했기 때문에 베토벤의 저주가 서렸다고들 하는 데 이 미신과 같은 전통은 말러가 9번을 남기고 죽음으로써 그 절정에 이르렀고 그밖에 슈베르트, 브루크너, 드보르작 등 수많은 심포니 작곡가들이 우연스럽게도 9번을 마지막으로 사망해 버렸다.
역사는 심포니스트(교향곡 작곡가)들에게 운명적으로 비정했는데 그것은 꼭 9번을 마지막으로 많은 심포니스트들이 사망했기 때문이 아니라 차이코프스키, 브람스, 슈만 등 다른 위대한 심포니스트들도 모두 미쳐 죽거나 외로운 독신으로 고독한 인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심포니는 왜 운명적으로 심포니스트들에게 비정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절대 아름다움이라는 금단의 열매, 운명에 대한 도전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음악(형식) 중에서도 교향곡 만큼 ‘사투’라는 단어가 뼈저리게 느껴져오는 장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교향곡이야말로 하나의 시, 따스한 인생의 이야기를 나누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혼자만의 세계를 비쳐보기 위한 한 권의 일기를 쓰자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만인에게 드러내야만하는 자기 자신의 전부? 혼자만의 싸움이자 아름다움과의 사투, 절망과 고독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심포니는 음악의 옷을 빌린 철학이라고도 한다.
한 때 바다에 나가 음악을 듣던 때가 있었다. 바다의 아름다움때문보다는 그 파도치는 고독이 왠지 음악처럼 느껴져서 였다. 망망대해의 절벽 파도와 함께 띄워보는 음악은 고독이 아니라 아픔이었다.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이 꼭 낭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 때 알았다.
인간이 살아있고 느낀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동시에 고통스러운 것인가. 산다는 것은 때로는 파도의 파편 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아픔이다. 눈부신 광채 고독의 몸부림 인간은 과연 절망을 느낄 수 없는 것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래서 니체는 말했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아름다움(구원)이 없어서 절망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 절망이 없어서 절망스러운 것이라고. ‘음악을 모르는 자와는 상대도 하지 말라’는 그의 말은 음악을 모르는 자가 무가치하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다만 음악을 모르는 자는 고독(절망)을 모른 다는 뜻일 뿐이다. 음악은 고독하다. 왜? 그 스스로 아름답기 때문에.
사람은 절대 아름다움에 목말라 하는 존재들이다.
인생은 외로운 홀로 걷기 그러나 아름다움만 있다면 헤쳐갈 수 있다. 브람스, 브루크너, 니체, 베토벤 수많은 심포니스트(음악의 영혼)들이 외로운 홀로 걷기를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음악이 존재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당신은 단 한번이라도 누구에게 뜨겁고 고독한 음악이 되어 본 적이 있습니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수천번 깨지고 부서지고, 죽어지는 가운데 비로소 한 줄의 절망의 언어 심포니가 탄생하는 법일 테니까.
역사상 최초의 심포니스트(교향곡 작곡가)는 하이든이었다. 그 이전에도 ‘심포니아’라는 관현악 형식이 존재했지만 교향곡이란 소나타 형식을 최초로 정립한 사람은 바로 하이든(1732-1809)이었다. 교향곡을 104편이나 남긴 하이든을 이어받은 사람이 베토벤이었고 오늘날 심포니 홀,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의 이름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고전주의의 완성자 베토벤 덕분이었다. (최초의) 운명 교향곡을 들었던 감동은 평생 잊지 못한다고 한다.
하이든이 최초의 심포니스트였다면 마지막(라스트) 심포니스트는 누구였을까? 물론 음악의 역사는 지금도 진행형이기에 라스트란 단어는 심포니에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난 1백여년간 진정한 심포니가 탄생한 바 없다는 점에서 라스트 심포니가 주는 의미는 크다. 시기적으로는 쇼스타코비치(1906-1975)가 라스트 심포니스트로 불릴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공산주의에 이용됐고, 순수한 의미에서의 라스트 심포니스트는 사실상 말러(1860-1911)에서 그 종말을 고했고, 그 옆에 시벨리우스(1865-1957)가 있었다. 말러의 대표작은 부활 교향곡이었고 시벨리우스는 2번 교향곡을 대표작으로 남겼다. 시벨리우스가 조국(핀란드)의 자연을 심포니에 옮겨놓은 데 비해 말러는 부활이라는 원대한 인류의 이상을 심포니로 그려 문자 그대로 ‘라스트 심포니’에 부끄러움없는 명성을 역사 속에 영원히 새겨 넣었다.
말러가 1894년 ‘부활 교향곡’을 완성, 함브르크에서 초연 할 당시 티켓(입장권)을 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오로지 사비를 털어 초연을 본 말러는 ‘부활’연주 후 드레스 룸에서 탈진으로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이 원대한 작품은 한시간 반이 넘는 곡의 규모도 규모였거니와 독창, 합창, 대규모 교향악단이 함께 펼쳐야하는 하는 무겁고도 힘든 곡이었다.
‘부활’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이 작품은 초연 당시 부터 ‘성공’이냐 ‘실패’냐, ‘믿음’이냐 ‘회의’냐의 대립이 난제해 있었고 바그너가 그랬듯 참으로 음악이라는 차원을 넘어선 ‘사상’과 ‘종교’, ‘문학’이 결합된 창조의 결정판이었다. 부활 교향곡은 규모의 거창함 만큼이나 많은 애피소드가 전해오는데 부활 교향곡을 세계에서 가장 잘 지휘할 수 있는 지휘자는 음악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Gilbert Kaplan라는 출판업자가 가장 정평이 높다. 길버트는 유일하게 부활 교향곡만을 지휘하며 ‘부활’의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는 데 그 탁월한 해석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부활’의 매니아이며, 또 길버트와 같은 부활 교향곡의 매니아는 전세계에 수도 없을 만큼 ‘부활’에 대한 사랑은 열광적이다.
무엇이 부활교향곡에 그토록 미치게 만드는 것일까? 시내가 강물을 만들고 강물이 바다를 이루듯, 그것은 둑이 터지듯 힘차게 터져나오는 부활의 이상, 그 고함(합창) 때문일 것이다. 인류 역사상 이처럼 힘차고 격한, 한의 승화와 인류의 이상이 무지개 처럼 터져나오는 감동의 환희를 안겨준 예도 찾아 보기 힘들 것이다.
모두 5악장으로 된 이 곡은 5악장 클라이막스에서 시인 크로푸슈토크의 시 ‘부활’과 말러의 자작시가 연합, 합창과 더불어 거대한 소닉 사운드를 창조해 내는 데 피튀기는 환희의 고함은 장엄하다못해 차라리 처연하고 고독하기 조차하다. 새해에는 시린 절망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말러의 ‘부활’이 전하는 라스트 심포니와 함께 시작해 봄이 어떨까.(이 작품은 올 3월11일(부터4일간) 데이비스 심포니 홀에서 M.T. 토마스의 지휘로SF심포니에 의해 연주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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