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잘하는 니가 좀...”
▶ 자녀들엔 ‘버거운 짐’
“영어를 잘한다고 어른은 아니잖아요!”
영어가 부족한 이민 1세 부모를 대신해 통역관 노릇을 떠맡고 있는 한인 1.5·2세들의 흔한 외침이다. 이제 갓 고등학생이 된 14세 소녀 차모양은 친구들과 맘 편히 놀아본 적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언제 걸려와 무엇을 부탁할지 모르는 부모 때문에 24시간 대기상태다. 그렇다고 집에 있는 시간이 편하지만도 않다. 만만치 않은 학업량을 소화하기도 벅찬데 집에서는 늘 부모가 들이대는 각종 서류를 한국어로 설명해주고 문제가 생기면 모든 처리를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남겨두는 부모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원형 탈모증 초기 증상을 보일 지경이다.
차양은 “부모 입장을 이해 못하는바 아니지만 우체국 업무에서부터 각종 공과금이나 신용카드 관련 문제까지도 모두 해결해야하는 집안의 해결사 노릇을 하자니 버겁다”고 토로했다. 그보다 더 참기 힘든 것은 바로 자녀들이 영어를 잘하니까 미국에 대해 무엇이든 안다고 맘대로 생각하는 부모의 태도라고. 아직은 사회생활 경험이 일천한 미성년자일 뿐일진대 잘 모른다고 답하거나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대답하지 못하면 “넌 영어도 잘하는 애가 그것도 모르
니?”라고 다그치는 부모의 모습에서 마음의 상처만 입게 되지만 그렇다고 말대꾸도 할 수 없어 외로움만 커진다고 고백했다.
미주한인청소년재단의 김미정 사무차장은 “재단을 찾아오는 많은 한인 청소년들은 1세 부모들이 자녀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생활 속에서 배우는 것에 큰 차이가 있음을 제발 알아주길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활 속에서 배우고 익히는 것들이 대부분 부모의 가르침 속에 이뤄져야 하지만 대부분의 한인 이민가정에서는 부모의 영어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실제로 뉴욕의 아시안 아메리칸 아동 &가정연합(CAC&F)이 지난해 여름 아시안 아메리칸 연구소(AAARI)와 실시한 공동조사에서 아시안 이민자 가정 자녀의 49%가 부모의 영어 통역을 전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인학생 28%가 참여했던 당시 설문조사에서 CAC&F는 영어 통역 도우미를 이유로 부모와 자녀의 역할전환에서 비롯된 미성년 자녀들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가족 구성원의 갈등과 불화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차양은 “1세 부모들은 우리에게 도전 정신을 기르라고도 하고 무엇이든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다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미국에서 10년, 20년씩 살면서 도대체 영어를 배우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묻고 싶다”고 항변했다.
차양은 부모에게 틈틈이 생활영어를 가르쳐보겠다고 결심도 했지만 소용없었다고. 오히려 “부모의 사업체와 연관된 모든 법률문제까지 해결해주니 넌 변호사가 되면 성공할 것”이라며 은근히 법대진학을 종용하며 한술 더 뜨는 부모의 속내가 과연 자녀의 행복을 위한 장래 목표이자 희망인지, 아니면 부모의 사업체에 도움을 줄 무료 변호사를 원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며 좌절감을 나타냈다. ▲제보: ktnyedit@gmail.com
<이정은 기자> julianne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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