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3년 12월16일밤 영국의 과세정책에 항의하는 식민지 미국인들이 보스턴에 정박 중이던 영국 상선 3척에 올라가 중국산 차 342상자를 바다에 집어던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보스턴 차 사건’으로 불리는 이날의 사건은 미국 독립에 불씨를 당기는 도화선이 된다.
영국이 식민지 미국에 수출하는 중국산 차에 세금을 부과하자 미국인들은 밀무역을 통해 차를 들여오는 방법으로 조직적 불매운동을 벌인다. 차 판매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영국의 차 도매회사들이 도산 직전에 내몰리자 영국은 과세를 풀고 도매 회사의 직판을 허용한다. 싼 가격에 타격을 받게 될 미국인 밀매업자들과 영국의 심한 간섭을 우려한 미국인들이 영국 군함의 호위를 받고 보스턴에 입항한 상선에 모호크 인디언으로 위장해 잠입, 차 상자들을 바다에 버린 것이다.
영어로는 ‘보스턴 티 파티’(Boston tea party)로 불리는 이 사건은 넓은 땅 신대륙에서 정부 간섭 없이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던 미국인들이 과세와 간섭에 반발해 벌였던 시민저항운동으로 기록된다.
당시의 저항운동이 요즘 미국에서 세를 불리고 있다. ‘보스턴 티 파티’를 본딴 ‘티 파티 운동’(tea party movement)이다. 세금 마감일인 지난해 4월15일 전국 500여 도시에서 동시에 시작된 이 운동은 7월4일과 9월12일 도시별 시위를 벌이더니 금년에는 아예 테네시 내슈빌에서 2월4~6일 전당대회 수준의 제1차 전국컨벤션을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석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새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가 기조연설을 맡는 등 적지 않은 세과시가 예상되자 공화당과 민주당의 입술이 바짝 타들어가는 모습이다. 페일린의 인기를 등에 없은 신 보수주의 운동으로 확산될지 모른다는 우려감 때문이다.
무당파를 내세우는 이들은 수년간 공화당과 민주당이 펼쳐오던 각종 조세등의 정책이 국가 근간의 자유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경기 부양을 위한 오바마 행정부의 퍼주기식 금융지원, 이로 인한 역대 최악의 재정적자, 이를 충당하려는 세금 인상정책, 전국민 의료보험 정책 등등에 반기를 들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였던 이 운동에 가난한 서민층의 지지가 만만치 않다. 얼마전 설문조사에서 지지율이 보수 성향의 공화당 지지율을 두배 가까이 앞서고 있다. 최근들어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끼어들면서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불황에 찌들고 전쟁에 지쳐 숨쉬기도 버거운 소시민 상당수가 귀를 기울이는 저항 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요즘 한인사회 민주평통을 지켜보면 ‘티 파티 운동’을 떠올리게 된다.
평통은 위원 인선이나 회장 선임때 마다 시끄럽기 일쑤였다. 금년에도 회장 선임을 둘러싸고 “한국 국회의원에 돈을 썼다” “청와대와 연결했다”는 등등 어김없는 잡음이 계속됐다. 얼마전에는 통일 기금 모금 골프대회에서 홀인원 조작 사건까지 벌어져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한국 회의에 가지도 않은 회원의 이름을 빌어 참가비를 대리 수령하다 걸린 사건, 북한 방문한 모 회장의 ‘김일성 찬양 문건사건’등등. 그렇지 않아도 곱지 않은 시선이 따갑게 내리치던 평통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해가 갈수록 도를 넘는다는 인상이다.
평통 위원은 자의반 타의반 한인사회에 명망과 신망을 얻는 인사들로 채워진다. 이 때문에 소시민들은 평통 위원들을 기대감과 부러움 섞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일부 인사들이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정도로 평통 위원에 집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일 한인사회가 평통에 등을 돌린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한인들의 위상도 높아질 것이고 한국 정부도 ‘모셔가기’로 태도를 바꿀 것이다. 한인타운판 ‘티 파티 운동’에 평통 위원 인선 거부 운동을 추가해 보면 어떨까 싶다.
김정섭 / 국제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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