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의 어느 날. 911 응급센터로 다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샌디에고 지역 125번 프리웨이를 달리고 있던 2009년형 렉서스 ES350 승용차의 뒷좌석 탑승자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911에 전화한 이 탑승자는 차량 가속페달이 끼어서 풀리지 않으며 브레이크 도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했다.
차량 속도는 무려 시속 120마일. 프리웨이 끝이 반마일 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한 이 탑승자는 응급센터 요원에게 “잠깐만요. 기도해 주세요”라고 외쳤다. 잠시 후 통화는 전화한 당사자와 동승자들의 비명소리로 끝이 났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결함이 발생한 렉서스는 결국 앞차를 들이받고 길가로 구르면서 화염에 휩싸였고 탑승자 4명 모두 목숨을 잃었다.
정말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프리웨이 운전도중 가속페달이 끼어서 움직이지 않고 브레이크도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라. 사상 초유의 도요타 리콜 사태는 바로 이 사고로부터 시작됐다.
가주 고속도로순찰대(CHP) 소속 마크 세일러 경관이 부인, 딸, 처남과 함께 렉서스 차량을 타고 가다 속력이 시속 120마일로 치솟으면서 발생한 이번 사고의 피해자들이 911 응급전화에 남긴 급박한 목소리가 ABC 방송을 통해 일반에 공개되자 미국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도요타, 그것도 도요타의 고급 차종인 렉서스가 치명적인 가속페달 결함을 일으켜 4명의 목숨을 빼앗다니.
도요타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다. 2007년 1·4분기 때 생산대수와 판매대수에서 70여년간 세계 1위 자리를 지킨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GM)를 제치고 정상에 등극했다.
‘도요타’ 하면 품질의 대명사로 많은 한인들에게도 알려져 있다. 오일 체인지만 제때 해주면 잔 고장 없이 20만마일은 거뜬히 탄다고 너도나도 구입을 권유하던 그런 자동차다. 혼다, 닛산, 수바루, 미쓰비시, 스즈키 등 수많은 일본 자동차 메이커 중에서도 가장 신뢰도가 높아 전 세계적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차가 바로 도요타다.
도요타의 모든 첨단기술이 들어간 차종인 하이브리드 프리우스의 경우 일본에서 작년 7월에 주문한 것이 아직도 구입자에게 전달되지 못했다고 하니 그 인기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인 도요타가 이번 리콜사태로 세계 1위 자리가 위협받는 것을 보면서 ‘기업은 가장 잘 나갈 때가 가장 위험하다’는 평범한 진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세계 1위에 오르기 위해, 또는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기 위해 오로지 생산대수와 판매대수에만 신경 쓴 나머지 품질관리를 소홀히 한 것이 결국 대량 리콜사태를 낳았다는 것이다.
리콜사태가 불거진 뒤 미국에서만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급증해 소송비용만 수십억달러를 쓰게 생겼다니 이쯤 되면 도요타 경영진이 ‘부품 한 개의 소중함’을 깨달았을 법도 하다. 도요타 리콜사태의 핵심은 회사 측이 문제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조치를 미뤘거나 은폐를 시도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자동차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만약 도요타가 고의적으로 문제를 덮으려고 한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도요타는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 확실하다.
이번 사태는 자칫 품질관리를 소홀히 할 경우 세계 정상의 기업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 다른 기업들도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일 것이다. 사소한 부품 하나라도 소비자의 안전과 직결된 것이라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점검해서 ‘이상 무’ 딱지를 붙여야 한다. 부품 한 개의 소중함을 간과하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도요타를 비롯한 모든 기업들은 명심해야 한다.
구성훈 /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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