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피코 코리아타운 도서관후원회의 이사들은 거의 노년층이다. 50대 중반인 내가 그래도 젊은 멤버에 속한다. 거의가 은퇴하시고 자원 봉사하는 분들이다. 후원회는 늘 토요일 아침 8시에 모여 이른 미팅을 하는데도 멀리 밸리에서 오렌지카운티에서 늦지도 않고 잘도 모인다.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이 도서관을 후원하기 위해 열심을 내는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나이 들면 아침잠이 없는 탓인지, 가까운데 살면서 종종 지각하는 젊은(?) 나는 가끔 놀란다.
아침커피를 마시면서 회의도 하고 수다도 떠는데, 종종 “맥도널드의 시니어 커피가 최고”라는 이야기들을 하신다. 그럴 때면 속으로 기호품인 커피를 왜 그런 분위기 없는 곳에서 사 마실까? 하며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스타벅스나 커피 빈에서는 마셔야 품위 있다고 여겼다. 은퇴한 전직 교수나 연구소장, 의사 등이어서 그분들의 수준을 생각하면 더욱 말이다. 물론 입 밖으로 내놓고 말하진 않았다.
아직은 노년층이 아닌 남편도 아침마다 국민 주방(이라며) 맥도널드의 커피를 마신다. 나는 집에서 맛난 커피를 내려서 마시지 맥커피는 사먹지 않았다. 얄팍한 자존심을 세우며 공연한 고집을 부려보는 것이다. 교회를 가는 주일 아침에도 시간이 많지 않은데 꼭 맥카페의 커피를 사는 남편이 짜증스러웠다. 어느 날 아침 남편이 산 커피를 한 모금 마셔보니 꽤 맛이 있었다. 향긋하기도 하였다. 값도 1달러밖에 안 된다니 더 놀랐다.
슬그머니 남편이 커피를 살 때 한 잔을 더 추가하면서 나도 요즘 맥커피에 맛을 들였다. 지난 주일엔 커피 두 잔을 시키고 드라이브 드루의 창구로 차를 움직였다. 캐시어가 남편을 힐끗 보더니 시니어 디스카운트를 해준다며 깎아준다. 늙어 보이는 남편 덕에 덩달아 50센트의 할인을 받았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탕감 받은 돈을 생각하면 즐겁지만 시니어 디스카운트 받을 만큼 늙어 보인다는 것엔 울고 싶었다. 남편도 나도 서로에게 그 책임을 전가한다. 서로 상대 때문에 디스카운트를 받았다며 우기다가 웃었는데 늙어 보인다는 말이 달갑지 않다는 뜻이겠다. 그래도 남편은 “늙어보여도 좋다. 시니어 디스카운트만 해준다면…” 한다. 나보단 실용적인 사람이다.
오래 전 유학생일 때의 살림을 생각해 보았다. 학교 밖에서는 일을 할 수도 없었고 본국에서 가져온 돈으로만 살아야했다. 한 달에 천불도 안 되는 돈을 쪼개어 학교 아파트의 월세 250불을 내고 나머지로 아이 키우고 살았다. 할인 쿠폰을 이용하고 세일만 찾아다녔고 1불짜리 햄버거도 선뜻 사먹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땐 푼돈 귀한 줄 알았고, 지금보다 훨씬 겸손했었다.
옛말에 ‘버는 자랑하지 말고 쓰는 자랑하라’는 말이 있다. 탈무드에는 부자가 되는 유일한 길은 ‘오늘 먹어야 할 것을 내일 먹는 것’이라고도 하였다. 쓰기를 권하는가 하면 먹을 걸 아껴 부자가 되라는 이도 있는 걸 보면 돈처럼 이율배반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돈이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난다’고 갈파한 쇼펜하우어의 말도 새겨 두어야 할 금언이다. 먹을 걸 안 먹어 모으는 부자보단, 과소비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적절하게 잘 소비하는 보통 사람들이 이 시대에 맞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출퇴근을 함께 하며 아침엔 맥커피를 사는 재미에 다른 즐거움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저녁 퇴근길엔 아이스크림콘을 사먹는 것이다. 시니어 디스카운트를 또 해줄까 싶어 돈을 낼 때 전전긍긍하는 재미도 있으나, 그 이후론 두 번 다시 디스카운트를 받진 못하였다.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며 마시다 보면 어느새 회사에 당도하고, 초컬릿 딥을 씌운 아이스크림콘을 이리 저리 핥다보면 벌써 집에 닿는 것이다. 자투리 돈의 소중함을 깨우쳐준 불경기의 교훈을 즐기는 요즈음이다.
이정아 / 재미수필문학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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