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에서 미용사로 일하고 있는 바샤 베레미는 28살밖에 안 되지만 현행법상 그녀의 직업은 건강에 해로운 것으로 분류돼 50살이면 펜션을 모두 받고 은퇴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염색약을 비롯해 하루에 수백 가지 화약약품을 쓴다”며 “그것이 해롭지 않다고 생각하느냐”고 그녀는 반문한다. 그녀는 “사람들은 젊을 때 은퇴할 수 있어야 한다”며 “150살까지 사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라고 덧붙였다. 맞는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외부 사람들은 왜 그리스 정부가 580가지 직업을 위험직으로 분류해 여자는 50세, 남자는 55세에 조기 은퇴할 수 있게 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 재정 파탄 나도 내 연금이 더 소중
라디오 아나운서도 위험직 분류돼 조기은퇴
그리스의 짜깁기식 은퇴 제도가 유럽의 국채 위기를 초래한 그리스 정부의 지출을 통제 불능의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연금 부담은 앞으로 급속히 증가할 것이며 투자가들은 정부가 충분한 돈을 마련해 놓지 못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 때문에 그리스가 적절한 이자에 돈을 빌리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강한 노조와 약한 정부 사이에 수십년간 맺어온 계약 덕에 그리스는 전체 근로자의 14%인 70만명에게 조기 은퇴를 약속했다. 이들의 평균 은퇴 연령은 61세로 유럽에서 가장 낮다. 조기 은퇴에 해당되는 직업 중에는 탄광과 폭탄 처리 같이 위험한 것도 있다. 그러나 라디오나 TV 아나운서들은 마이크로폰에 있는 박테리아에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악기를 다루는 음악인들은 폐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역시 위험직으로 분류된다.
그리스는 앞으로 다가올 위험의 전조에 불과하다.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과 이탈리아도 수십년간 세금을 높게 올려 후한 복지 혜택을 주는 제도를 선택해 정치적 평화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제 이들 정부는 장기간 후한 펜션을 주기로 한 약속을 재검토하고 있다. 그동안 가려져 왔던 비용이 수면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국은 사정이 좀 다르지만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7,800만 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들이 은퇴하면서 소셜 시큐리티와 메디케어 프로그램을 이용하기 시작하면 정부는 재정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세금을 올리거나 혜택을 줄이거나 은퇴 연령을 높이지 않고는 두 프로그램 모두 수십년내 자금이 바닥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주들도 공무원들에게 줘야할 연금 재원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유럽에서는 이미 후한 연금 혜택을 지키려는 근로자들과 세금을 더 올릴 수도 없고 투자가들도 돈을 더 꿔주려 하지 않아 혜택을 줄이고 은퇴 연령을 높이려는 정부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페이먼트를 하고 금융 위기에서 초래된 재정 적자를 메우느냐 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후한 연금제 때문에 유럽의 정부 부채는 공식 발표된 액수를 훨씬 초과한다. 이 때문에 그리스를 비롯한 약체 유럽 정부들은 더 이상 돈 꾸는 것이 어려워졌다. 워싱턴 케이토 연구소의 자가디시 고칼레의 연구에 따르면 펜션과 관련된 부채를 포함시킬 경우 그리스의 총 국채는 GDP의 875%에 달한다. 이는 유로 사용 16개국 중 최고며 그리스 공식 발표 수치인 113%를 크게 상회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부채 규모를 일부러 축소하고 있다. 프랑스의 공식 국채는 GDP의 76%지만 실제로는 549%이며 독일도 공식 수치는 69%지만 실제로는 418%이다. 고칼레는 다른 많은 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이것이 나라의 국채 규모를 바로 재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급속히 고령화되어가는 인구 비용이 나라 빚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펜션 지출 비용이 세수와 비교해 어떻게 늘어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며 “그리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주요 유럽 국가가 펜션 자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유권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줘야 하기 때문에 매우 풀기 힘든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유럽 국가가 GDP의 8%를 매년 쌓아 놓아야 하는데 이미 높은 세율에 시달리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세금을 더 올리면 경제가 타격을 받기 때문에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소셜 시큐리티 등을 포함한 총 정부 부채는 79조 달러로 GDP의 500%에 이른다. 현재 총 국채는 GDP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 부분은 수십년 동안은 괜찮지만 대부분의 선진국의 경우 노인 복지 비용을 부담할 근로자가 수가 줄고 있기 때문에 돈을 꾸는 것도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2009년 그리스에 관한 보고서에서 IMF는 노인층에 대한 과도한 펜션과 의료비용으로 이대로 가면 2050년에는 국가 부채가 GDP의 800%에 이를 것으로 경고한 바 있다. 이는 이론적인 수치로 투자가들은 이런 돈을 빌려 주기 전에 그리스 정부에게 복지 예산 삭감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스 전문가인 케빈 페더스톤은 “펜션 위기는 그리스 정부의 장기적인 개혁의지에 관한 가장 큰 테스트”라며 “의미 있는 개혁은 정부가 노조의 압력을 이기고 근로자들의 혜택을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는 은퇴 연령을 63세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 중인데 이것은 개혁의 첫걸음에 불과하다.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은퇴 연령을 현 60세에서 올리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노조 지도자들과 만났으며 스페인은 현 65세에서 67세로 올릴 방침이나 노조의 반발로 흔들리고 있다. 펜션은 정부와 근로자뿐만 아니라 정부 사이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다. 최근 은퇴 연령을 67로 올린 독일은 그리스에 가장 강력하게 개혁을 권고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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