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듯 하다”라는 말이 있다. 실체를 직접 경험하지 않고 말로만 듣거나 부분적인 인식만으로는 전체를 똑바로 알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남한사회의 북한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맹목적인 추앙과 주체사상에 대한 찬양이 도를 넘어 공식적인 정당이나 거대 단체의 지도사상과 실천이상으로까지 둔갑하 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랍고 황당하기까지 하다.
북한 사회주의체제하에서 수십년을 살았고 그 체제하에서 사회주의 이념과 학설에 대하여 가장 직접적인 체험을 한 우리 탈북자들은 한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북한찬양과 주체사상 신봉바람에 대하여 개탄하면서 “사회주의가 진정 이상사회라고 확신한다면 자본주의 사회인 남한을 힘들게 고치려 들지 말고 북한으로 가서 사회주의를 완성시키기 위해 힘쓰는 것이 어떠냐?”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얼마 전 웹서핑을 하다 보니 소위 진보라고 자칭하는 한 단체의 홈페이지에 들르게 되었다. 그런데 단체를 소개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읽고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사회주의자들은 현재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이 건설할 당을 사회주의 정당으로 설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당의 지도이념이 사회주의라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눈을 씻고 다시 보아도 역시 당의 지도이념이 사회주의라고 한다.
여기가 북한이 아닌가 싶어 흠칫하기까지 했다. 북한에서 우리가 지겹게 보아왔던 조선노동당의 기관지 “노동신문”이나 당 이론잡지 “근로자”를 읽고 있는 것 같아 여기가 한국인지 북한인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뒤엎고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내세운 10대 정책정강에는 지주들의 땅을 모두 몰수하여 농민들에게 분배하고 자본가들의 일체 재산을 국유화하고 노동자들 속에서 선출된 자주위원회가 국가와 공장을 관리하고 민병대가 사회질서와 치안을 지킨다 등이 있다.
북한에서는 벌써 수십년 전에 이들이 내세운 정책정강들이 이미 실현되었지만 결코 남쪽보다 더 살기 좋은 사회가 세워진 것은 아니다. 한 줌도 안 되는 고위간부들은 국유화된 모든 국부를 차지하고 떵떵거리며 살지만 절대다수의 인민들은 유례없는 기아와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강요되는 사상을 거부하거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으면 3대가 멸족당하는 현대판 봉건사회, 희대의 독재사회에서 대를 이어 가며 김씨 왕조를 칭송하면서 “오늘을 위한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가 겪었던 북한의 현실이다.
북한에는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도 개인소유가 없다. 모두가 전인민의 소유이고 나라의 주인은 전체 인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국가재산인 산업을 비롯한 공공재의 운영과 이익의 배분은 주인인 국민들이 맡아서 해야 하나 인민들의 의사를 대표한다는 미명하에 김정일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북한이 내놓고 선전하듯이 조선노동당은 수령의 당이고 인민군대는 수령의 군대, 인민도 수령의 인민이다. 결국 전 인민적 소유란 있을 수 없으며 이것은 ‘수령소유’의 다른 말에 불과하다.
분명히 말하지만 북한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과 사회주의에 대한 맹신은 하나의 허상이며 자기파멸이다. 사회주의에로의 변혁시도는 진보적인 의식 활동이 아니라 폐기된 이념과 체제에 대한 회귀이며 복고이다.
북한에서처럼 국민들이 입과 눈, 귀를 가지고도 함부로 말할 수 없고 볼 수도 없으며 더욱이 들을 수도 없게 만들어 놓은 체제하에서는 그 어떤 사회적 진보나 변혁에 대해서 생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소위 진보인사들이 현실을 바로 보기 바란다.
김흥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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