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기업 중역들이 유로화를 보는 시각은 단순했다. 강한 달러는 좋고 강한 유로는 나쁘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지난 11월 유로화가 유로당 1.50달러에서 최근 1.37달러로 하락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지고 있다. 유로가 내려가면 수출에는 좋다. 유럽산 자동차와 기계, 맥주 등이 해외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되고 미국이나 중국에 수출하는 상품의 유로화 가치는 높아진다. 유로 하락은 또 심한 무역 적자에 시달리는 그리스와 스페인, 포르투갈 같은 나라가 외국에 수출하는데 도움을 준다.
수출 진작 효과 불구, 투자가 불안 반영
수입물가 상승·경제성장 둔화 등 부작용
프랑크푸르트에 본부를 둔 독일 기계 제조업자 단체인 독일 엔지니어링 연맹의 수석 경제학자인 랄프 비커스는 “유로화 하락을 슬퍼하는 사람은 하나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석유를 비롯 달러로 표시되는 원자재 값은 오르고 있다. 외국 수입품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 물가도 덩달아 뛸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유로화의 추락이 미국에 비해 경제 성장률이 더딘 유럽의 상징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유로의 하락은 그리스 국채 위기와 유럽 연합이 회원국들이 확실하게 건실한 재정 정책을 시행하도록 할 능력이 없다는데 대해 투자가들의 심판이다.
독일 의료 회사인 프레제니우스의 총수인 울프 슈나이더는 “달러가 강하다기보다는 유로가 약한 것”이라며 “전 세계가 바라보고 있고 유로화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유로는 그리스가 12.7%에 달하는 재정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감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낙관론이 퍼지면서 지난 2월 유로당 1.35달러에서 소폭 올라 있는 상태다. 단기적으로 유로화 하락에 베팅을 한 투자가들이 손을 털고 나가면서 1.40달러까지 반등할 수 있을 것으로 프랑크푸르트의 외환 딜러들은 보고 있다.
지난 주 유로는 유럽 지도자들이 그리스 정부에 재정적자를 줄이라고 압력을 넣을 수 있느냐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다시 1.36달러로 하락했다. 스탠다드&푸어가 그리스를 크레딧 하향 조정 대상국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하자 이같은 우려도 다소 가라앉았고 이에 따라 유로도 소폭 상승했다.
향후 1년 동안 미국이 유럽보다 빠르게 성장하면서 유로도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달러는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가 유럽 중앙은행보다 빨리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보여 더 빠른 속도로 상승할 전망이다. 경제 상정율도 높고 금리도 높아 투자가들이 달러를 선호하게 될 것이란 얘기다.
프랑크푸르트 코메르츠 뱅크의 외환 분석가인 안티예 프래프케는 “FRB가 올해 말 이자를 올리기 시작할 것이며 그 속도도 빠를 것”이라며 “유럽 중앙은행은 내년이나 돼야 이자를 올릴 것이며 속도도 느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금년 말까지 유로가 1.20달러 선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중요한 것은 유로의 가치가 아니라 변동성이다. 유럽 경제 지도자들은 유로화의 가치가 급속히 변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프래프케는 “기업들은 1년에서 18개월 후를 내다보고 계획을 세운다”며 “환율이 갑자기 변하면 기업들은 이에 대응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2년은 롤러코스터나 다름없었다. 2년 동안 꾸준히 오른 다음 유로는 2008년 7월 1.60달러로 정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금융 위기가 발생하면서 유로는 다른 화폐와 마찬가지로 심한 등락을 거듭했다. 2008년 11월에는 1.24달러로 떨어졌다가 작년 12월에는 1.50달러까지 치솟았다.
프레제니우스의 슈나이더는 “유로 가치보다 등락의 폭과 속도가 더 중요하다”며 “작년에는 보통 회사가 대응하기에 너무 변동 속도가 빨랐다”고 말했다.
달러와 유로, 엔화의 급격한 변동은 동유럽과 아시아의 다른 화폐들에게까지 영향을 줬다. 폴크스바겐 같은 회사는 루블화 등의 급격한 변동 때문에 작년 12억 유로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 뮌헨에 본부를 둔 유니크레딧의 크리스천 아우스트는 “올해는 환율이 안정세를 찾고 있기 때문에 손실액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의 맥주 회사인 하이네켄은 개발도상국 화폐가치가 폭락하면서 큰 손실을 입었다. 폴란드 즐로티 화가 23% 폭락하면서 3,700만유로의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2008년 달러화 약세로 입은 손실은 1,700만유로에 불과하다.
기업들은 지난 10년간 급속한 환율 변동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작은 회사들도 이제는 환 헤지를 하고 있다. 벤츠나 BMW 같은 회사들은 아예 공장을 미국 안에다 짓고 있다.
많은 회사들에게 환율은 제일 큰 걱정거리가 아니다. 청력 보조기 오티콘을 생산하는 덴마크의 윌리엄 데만트 그룹의 스테판 잉길센은 “환율이 걱정할 만큼 변동이 심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덴마크는 유로 국가는 아니지만 덴마크 화폐는 유로화와 비슷하게 움직인다.
이 회사 판매의 35%가 미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별로 걱정하지 않는 것은 놀랍게 여겨지지만 이 회사는 달러로 가격을 계산하는 중국 업체들로부터 부품 대부분을 수입하기 때문에 환율 변동에 별 영향이 없다. 달러가 강세를 보여도 2010년 수익에는 1~2%밖에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란 얘기다.
수입 물가가 오르는 것도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유가가 오르면 유럽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풍력 에너지 회사들이 득을 볼 것이란 전망이다. 기계 생산협회 경제학자인 비커스는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드는 회사들에게는 지금이 기회”라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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