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에서는 김길태의 여중생 성추행 살해 사건이 아이티나 칠레의 지진 못지않을 만큼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곳 LA까지도 그 충격이 파고 높게 번져 왔다.
한 사람의 잔인한 범죄가 4,800만 온 국민의 분노와 저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 국민감정에 호응이라도 하듯 경찰은 범인의 얼굴을 공개하는가 하면 관계 장관은 청송에 있는 감호소를 방문하고 사형시설을 설치하느니 마느니 하는 뉴스도 들린다.
꽃도 피워보지 못한 가녀린 소녀를 무참히 짓밟고 그것도 모자라 생명까지 빼앗고 물통 속에 버렸다는 끔직한 범죄가 경찰 수사로 드러나면서 온 국민이 한마디로 분노에 치를 떨었다. 김길태는 희대의 악마가 됐고 그를 저주하는 소리만이 태풍처럼 거세게 인다. 이 판국에 김길태를 동정하는 소리나 돕자는 소리가 나올 리 없다.
나도 김길태의 범행이 용납되지 않는다. 김길태의 범행에 분노하고 어린 죽음에 눈물을 흘렸다. 그 죽은 여중생의 부모와 동기와 친구들의 슬픔이 얼마나 절절할까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진다. 그의 양부모는 가난하지만 순박한 사람들인 것 같다. 그런데 누구보다 가슴 아파야 할 양부모는 저 멀리 뒷전에 밀려나 있다.
더구나 무슨 사연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33년 전에 김길태를 어느 교회 앞에 버린 생부모의 흔적은 아무 곳에도 없다. 김길태 혼자 돌을 든 군중 속에 둘러 싸여있다.
김길태는 중학교 1학년 때 까지만 해도 여느 아이들처럼 맑고 천진스런 개구쟁이였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보도를 보면 그가 생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양부모 밑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엇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일생을 좌우할 부모의 사랑과 가족의 유대로부터 떨어져 나가 붙잡을 아무것도 없는 거친 파도 속에 내 던져버려졌다는 배반감! 그때의 충격은 아무도 헤아릴 수 없으리라.
더구나 현실 적응에 양부모가 충분히 신경을 쓰지도 못했을 것이고 아무도 보듬어 주지 못했으리라고 생각된다. 무엇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그 버림받은 사건이 자신도 용납할 수 없는 범죄의 씨앗이 된 건 아닌지, 그리고 그의 빗나간 인생역정에 대한 책임이 오로지 그 혼자에게만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그의 양부모나 그가 다니던 학교나 사회는 그의 상처를 얼마나 알았으며 또 치유나 하려 했겠는가?
좀 곁길로 가는 말 같지만 내 나름대로 느끼는 것은 미국사람들의 아이 키우는 방식도 문제가 있지 않나 한다. 우리는 아이들을 안을 때 엄마 눈을 보고, 또 엄마의 냄새를 맡고 엄마의 가슴을 만질 수 있게 마주보고 안아 주지만 이곳 사람들은 대체로 밖을 보게 안는다. 아마 신체 구조상 그렇게 안는 게 아이에게 편하다고 생각되는 모양이다. 이런 미국사람들의 양육 방법이 아이의 정서적 안정감을 해치고 부모와의 유대감을 희석시키고 크게는 사회적 불안이나 범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
김길태는 친 엄마의 가슴에 안기거나 업힌 기억도 없을 것이다. 오직 버림받은 현실만 떠안고서 감당할 수 없는 상처만 키우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그 결과로 저지른 범죄 때문에 혼자 책임을 져야 한다. 버린 부모, 양부모, 학교, 사회 그리고 나라, 아무도 책임의 일단을 지지 않는다. 그 가운데는 교회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불쌍한 영혼을 위해 교회에서 기도회를 가졌다는 말도 없다.
예수님은 99마리 양을 버려두고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선다고 말씀하셨다. 치켜든 돌을 거두고 나를 보자. 그러면 김길태를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배광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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