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속을 벅차게 만드는 우리들의 선조이자 애국지사다.
지난 26일은 이토 히로부미 초대통감을 중국 하얼빈역에서 저격하고 32세의 젊은 나이로 불꽃같은 짧은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던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북가주 지역에서도 미주 안중근의사 기념 사업회(회장 윤자성) 주도로 27일(토) 산타클라라 연합감리교회(담임 이성호 목사)에서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추념식’이 열렸다.
하지만 참석한 인원은 고작 40여명... 그나마 신맹호 부총영사를 비롯, 김이수 SF 평통회장, 김호빈 SV한인회장, 송이웅 북가주 광복회장 등 행사 순서지에 이름이 올라있는 VIP들을 제외하면 연합감리교회 교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초라한 자리였다.
안 의사가 우리 민족을 위해, 우리 조국의 광복을 위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것에 비하면 북가주 한인들이 보여준 안 의사 100주년 추념식은 아쉬움이 많이 남을 수 밖에 없었다.
기념사업회의 홍보부족 때문인지 혹은 안 의사에 대한 북가주 한인들의 무관심 때문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이민생활의 바쁜 삶에 얽매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텅 빈 자리를 보는 것이 죄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라는 것이 안 의사가 남긴 마지막 말이자 유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뤼순 감옥에서 형이 집행된 후 뤼순 감옥 뒷산에 묻힌 그의 유해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가 그렇게 바라던 국권이 회복된 조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기에 더욱 가슴을 저미게 만들고 있다.
위대한 독립운동가이자 계몽가이며 때로는 교육가이기도 했으며 독실한 신앙인이자 평화주의자였던 그가 우리 후손들에게 수많은 교훈과 삶의 의미를 남겼기에 그의 순국을 추념하는 자리가 후손들로 가득 메워지지 못했기에 더욱 짠하게 느껴진다.
안 의사의 의거 후 중국의 최고 실력자였던 원세개는 5억 중화인이 해내지 못한 일을 조선 청년이 해냈다라며 찬탄하기도 했었던 그런 위대한 인물이였기에 말이다.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것은 손주나 아이들의 손을 잡고 행사에 참석한 이들이 있어서 형식적으로 자리만 가득 채우는 것보다 더 의미있는 모습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 안 의사를 생각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며 사는 우리들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이성호 목사의 기도처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추념식에는 참석하지 못했으나 한번쯤 그의 삶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나마 가졌으면 좋겠다.
<이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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