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로 고용시장이 악화하면서 고학력과 화려한 경력 소지자들이 일자리를 가리지 않는다. 전에 일하던 기업, 직급에서 몇 단계 내려간 회사나 직위에도 감지덕지하고 구직신청을 하는 분위기이다. 덕분에 중소기업들은 호황기에는 넘볼 수 없던 우수한 인력을 고용해 재미를 보고 있다.
고용시장 악화하며 학력·경력 안 가리고 취업
일에 비해 자격 넘치는 직장인 5명 중 한명 꼴
“불황 덕분에 우수인력 채용”중소기업들은 환호
일류 대학 경영학 석사 소지자이자 재정 분석가로 일했던 돈 캐롤(31)은 지금 캔사스 시티의 소규모 가족운영 이삿짐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이사 중 발생하는 고객 불평담당 부서를 총괄한다. 그의 학력·경력으로 보면 자격이 넘치는 일이다.
그러나 그는 6개월 간 실직을 한 상태로 절박했고 카트라이트 인터내셔널이라는 이 회사는 수십년 미뤄온 업무 현대화 작업을 추진하고 싶었다. 결국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지난 12월에 채용된 캐롤은 그 즉시 고객 불평 담당부서 업무를 쇄신하기 뜯어고치기 시작했고 회사의 경비 지출 현황을 추적할 수 있는 새로운 장치도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캐롤처럼 자격이 과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 통념이다. 자신의 능력에 비해 낮은 일을 하게 되면 업무에 재미를 못 느끼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캐롤이 지금 맡은 일자리 구인광고에는 ‘학사학위 소지자면 좋겠지만 필수조건은 아님’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일을 시작한지 4개월이 된 지금, 회사 내 모든 관련자들은 만족해하고 있다.
지금 미 전국에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불경기로 일자리 찾기가 어려워지면서 구직자들이 기대치를 낮추자 종소기업들은 감히 차례가 돌아오지 않던 좋은 인력을 얻는 횡재를 누리고 있다.
평소 일하던 직급에서 여러 등급 아래의 일자리를 마다않는 우수한 인력들이 미국의 중소기업들을 채우고 있다. 전문직 종사자가 당장의 생계를 위해 홈 디포나 스타벅스 같은 ‘생존형 일자리’에 들어가는 극적인 경우는 아니라도, 이전의 최고재정관리인(CFO)이 회계 감사관으로 일하고 마케팅 디렉터가 말단 분석가로 일하는 것이다.
지금의 고용시장에서는 일자리 한 개에 구직자가 5명꼴이고 보면 이런 현상은 아마도 불가피할 것이다. 고용주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 인재들을 할인가로 고용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자격이 넘치는 직원을 채용하면 곧 싫증내고 이직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캐롤의 경우는 회사 업무를 전문화하려는 회사 측의 필요에 잘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그는 지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실직으로 집을 차압당하고 4명 가족 중 유일하게 돈을 버는 그의 형편으로는 잘 된 일이다.
자격이 넘치는 직원을 뽑고 나면 이들이 적응을 못해서 회사가 다시 사람을 고용하고 훈련을 시켜야 하는 번거로운 일들이 생기는 경우들이 없지 않다. 그런데 카트라이트의 경우는 캐롤을 비롯해 새로 뽑은 자격 넘치는 직원들이 잘 적응하고 있다. 회계 담당직원으로 새로 고용한 사람은 공인회계사이다. 새 인사과장은 과거 직원이 5,000명인 회사의 인사부처를 담당했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단출하게 65명의 직원만을 대상으로 한다.
이런 자격 넘치는 직원들로 인해서 자그마한 규모의 카트라이트는 업그레이드가 되고 있다. 이 회사로서는 불경기 덕분에 호경기라면 감히 넘보지 못했을 우수한 인재들을 고용하는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경력이나 학력에 비해 처지는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지 그 정확한 숫자를 알 길은 없다. 사실 그것은 주관적인 판단의 문제여서 딱히 가려내기도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다.
몇몇 관련 연구에 의하면 미국의 직장인 가운데 대략 5명 중 한명이 그런 상황이다. 불황이 되면 이런 숫자가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어쨌든 많은 구직자들, 특히 전문직 종사자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불평은 낮은 직급의 일자리에 구직 신청을 해도 번번이 거부를 당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 일자리를 간절히 원하고 있고, 그 일이라는 것이 눈을 감고라도 할 수 있는 일인 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관련 연구에 의하면 스스로 과분하다고 생각하는 직원이 그 일자리에서 느끼는 만족감은 그렇지 않은 직원에 비해 낮고 이직률도 높다. 그러나 이런 직원들은 업무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사실도 연구들에서 드러났다.
자격이 넘치는 인력을 채용했을 때 야기되는 부정적 요소들은 그들에게 좀 더 자율권을 주어 스스로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하면 해소된다는 증거도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새로운 변수는 경제적 기후가 상당기간 계속 어두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승진의 사다리를 올라가고 싶어 하던 직장인들은 이제 단순히 어떤 일자리든 일자리를 붙잡고 있는 것으로 만족해한다. 실업률이 불경기 이전의 수준으로 돌아가려면 몇 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고 보면 이직률 또한 한동안 낮을 수밖에 없다.
매서추세츠의 재키 스완슨(44)은 전국에 에너지 효율성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훈련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그는 이 회사의 파트타임 설비 매니저로 취직했다. 감원되기 이전에 그는 16년간 대기업 설비 계획 담당으로 50여개 사무실의 관리를 맡았었다.
당시 그의 위치는 프로젝트 매니저에 가까웠다. 지금 직장에서 그는 본부 건물을 관리하는 정도이다. 지금 회사의 인사 담당자에게 그는 일에 대한 자신의 우선순위가 바뀌었으며 이 회사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말을 설득력 있게 해냈다.
“보수가 대폭 깎이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안정적이 되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그때부터 스완슨은 풀타임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그가 맡고 있는 책임은 아직 그의 경력에 비해 낮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직장을 바꿀 계획은 없다.
“여기서 행복해요. 존중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카트라이트에서 캐롤은 부서 일을 독자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충분히 바쁘다. 아울러 그는 회사의 재정이나 회계 담당 매니저들이 필요하다고 하면 기꺼이 나서서 일을 돕고 있다. 상사들의 요청에 대해 그는 의식적으로 더 열심히 일을 해준다.
그렇다고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지금 수입은 과거에 비해 1/3이 적다. 그래서 새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찾지는 않아도 고용시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뉴욕 타임스 - 본사 특약>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