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주에선 개나 고양이에게 불임시술만 해줘도 주정부의 존경대상이 된다. ‘애완동물 불임시술의 날’(2월23일)에 앞서 캠페인성과를 높이기 위해 주상원이 불임시술에 동참하는 주민들을 치켜세우는 결의안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한달전인 1월15일엔 시애틀 프로축구단 사운더스 FC를 기리는 결의안이 상·하원을 통과했고, 지난 3월16일엔 오는 6월30일 은퇴하는 워싱턴주 학교관리인 협회의 바바라 머튼스 부회장을 칭송하는 결의안이 상원에서 채택됐다.
비디오 게임업체 ‘페니 아케이드’의 공동업주인 ‘타이초’와 ‘게이브’를 기리는 결의안도 당당히 양원을 통과했다. 15년전엔 워싱턴주 출신의 록큰롤 가수 로빈 로버츠가 부른 ‘루이 루이’를 워싱턴주 공식노래로 지정하는 결의안이 채택됐다.
주의회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대개 그 사안이 법으로 제정하기엔 약하고 그냥 넘어가기엔 아쉬운 것들이다. 워싱턴주에 기여한 점이 인정되는 개인 및 단체에 돈 안들이고 생색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니 자연히 남발될 수밖에 없다.
타주 주의회나 연방의회도 역시 벼라 별 결의안을 쏟아낸다. 문안도 천편일률적이다. “다음과 같은 사실에 비추어(Whereas…)”로 시작되는 문장이 지루하게 이어진 뒤 “그러므로 본 의회는 ‘아무개’를 기리는 결의안을 채택한다”로 끝맺는다.
지난 2003년 캘리포니아 주의회가 1월13일(하와이에 첫 한인 이민자가 도착한 날)을 ‘한인의 날’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을 때나, 2005년 같은 내용의 결의안이 연방의회를 통과했을 때 필자는 시큰둥했다. 흔해터진 결의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워싱턴주 상원이 2007년 2월23일 신호범 의원의 발의로 한인의 날 지정 법안을 가결한 후 4월9일 크리스 그레고어 주지사의 서명으로 확정됐을 때 필자는 환호했다. 전국 최초로 한인의 날이 결의안이 아닌 정식 법(SB 5166)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는 전국에서 한인인구가 가장 많을 뿐 더러 주의회에도 한인의원이 있지만 한인의 날 지정법은 요원하다. 캘리포니아 주의회 사상 최초유일의 한인의원인 매리 하야시 하원의원은 해마다 한인의 날을 ‘확인하는 결의안’을 상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워싱턴주 한인들이 한인의 날에 특별히 자부심을 갖는 건 그 때문이다. 지난 2008년 첫 한인의 날 기념행사를 올림피아 주청사에서 뻑적지근하게 치른 것도, 그 행사에 2,000여명의 한인이 기꺼이 달려가 참석한 것도 바로 이 같은 자부심의 발로였다.
그러나 2회 행사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자부심보다 자괴심이 더 고개를 들었다. 첫 행사가 대성공을 거둔 탓인지 2회 행사의 주관권을 놓고 단체장들이 옥신각신하는 바람에 많은 한인들이 눈을 돌렸다. 결과적으로 2회행사도, 3회행사도 기대만 못했다.
내년에 열릴 4회 기념식을 놓고도 벌써부터 잡음이 일고 있다. 지난 주말 내년행사 준비위원회 구성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단체장 회의가 준비위원장 선정순서부터 삐걱거렸다고 했다. 이러다간 내년 기념식도 보나마나 뻔하다는 자조의 말도 들린다.
한인들의 화합과 단결을 도모한다는 본래 취지와 정 반대로 대립과 분열만 조장하는 기념식은 구태여 계속할 이유가 없다고 꼬집는 사람도 있다. 솔직히 기념식이라는 것도 ‘그 밥에 그 나물 식’의 인사들이 지루하게 늘어놓는 기념사와 축사로 채워질 뿐이다.
한인의 날은 어차피 상징적이다. 말 많은 기념식보다는 이날 모든 한인이 집과 업소에 태극기를 달도록 캠페인을 벌이는 쪽이 더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주류사회에 한인의 존재를 알리고 후세들에도 민족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효과적 방법일 수 있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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