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때 전사한 미군 병사의 유해가 그가 보낸 편지봉투에 남아있던 타액의 유전자 감식을 통해 신원이 확인돼 유족들의 품에 안기게 됐다.
고향에서 영원한 안식처를 찾게된 주인공은 지난 1941년말 진주만 인근에 있던 전함 오클라호마호에서 전사한 제럴드 레흐만 미 해군수병. 레흐만 수병의 유해는 그동안 `하와이 국립묘지’에 68년간 `무명용사’로 분류된 채 묻혀있었으나 최근 `미군 합동 전쟁포로.실종자확인 사령부(JPAC)’에 의해 신원이 확인됐다.
레흐만 수병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진학을 원했으나 나이가 너무 어려 힘들게되자 `일단 나라를 위해 의무를 다하겠다’며 17살의 나이로 해군에 자원했고, 부모들도 당시는 평화시여서 이를 허락했다.
레흐만 수병은 그러나 입대 1후인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 시작됐고, 이후 같은해 12월7일 전함 오클라호마호에서 기관병으로 근무하던 도중 일본 해군의 공격을 받아 전사했다. 당시 오클라호마호에 있던 해군장병 429명이 숨졌다.
레흐만 수병에 대한 신원확인은 그의 조카인 페기 저메인에 의해 시작됐다. 저메인씨는 레흐만 수병의 어머니인 숙모가 지난 2005년 평생 소원이던 아들의 유해를 찾지 못한 채 숨을 거두자 대신 삼촌의 시신찾기에 나섰다. 수소문끝에 삼촌의 유해가 하와이 호놀룰루 펀치볼에 있는 국립묘지의 무명용사 묘지에 90여명의 다른 병사 유해와 함께 묻혀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과정에서 진주만 공격당시 살아남아 여생을 태평양전쟁 때 전사한 무명용사들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온 레이 에모리(88)씨도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
JPAC 신원감식팀은 두사람의 건의를 받아들여 무명용사묘지에 있던 유해를 발굴해 2006년 레흐만 수병 등 5명의 신원을 잠정적으로 확인했다.
이후 신원감식팀은 조사원들을 페기씨에게 보내 과거 레흐만 수병이 훈련소와 부대에서 가족들에게 보냈던 편지 64통을 가져다 DNA 조사를 실시했다.
감식팀은 처음에는 핵 DNA 감식방법을 사용했지만 정확한 신원규명에 실패했다. 이후 미토콘드리아 DNA감식법을 통해 레흐만 수병이 편지를 보내면서 봉투를 붙이기 위해 사용한 타액을 분석해 레흐만 수병의 여동생인 바바라 헤리스의 DNA와 일치하는 사실을 확인했다.
JPAC의 유전자감식팀의 알렉산터 크리스텐슨 팀장은 "미토콘드리아 DNA 감식방법이 유해 신원확인에 아주 효과적이란 사실이 입증됐다"면서 "앞으로도 전사 미군의 신원확인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레흐만 수병의 유해는 오는 6월 미군 의장대의 호위속에 고향인 미시간으로 돌아가 영원한 안식을 취할 예정이라고 `유에스에이(USA) 투데이’가 14일 전했다.
(애틀랜타=연합뉴스) 안수훈 특파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