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선교사가 오래전 서울대 전철역 인근을 지날 때의 일이다.
“봉천교회라고 있었는데 사도행전 20장 23절의 말씀을 밖에 적어 놓았더군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몸에 전율이 왔습니다. 목숨을 걸고 해야할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왕 예수 믿는 것 이렇게 믿어보자 결심했습니다.”
당시 기자가 되고 싶었던 그는 모 신문 입사 시험도 합격한 상태였다. 한 신문에 국제기아대책기구(KFHI)에서 기아봉사단원을 뽑는다는 광고가 났다. 훈련을 지원했다. 그 때가 1994년. 기아대책기구에서 간사로 1년 간 있다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르완다로 가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 선교사는 “등산 가방에 짐들을 꾸겨 넣고 그 다음날 비행기를 탔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지에서 두 달만에 간염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그곳에서 부인을 만났고 이듬해 한국에 돌아와 결혼했다.
케냐 본부 사무장 2년, 미국 컬럼비아대 국제개발대학원 유학, 아프가니스탄 4개월... 그리고 한인 최초로 국제기아대책기구의 우간다 책임자로 발령을 받았다. 이 선교사의 표현을 빌자면 그야말로 악전고투. 전쟁에 임하는 자세로 일한 4년이었다. 일이 날마다 여기 저기서 터지고, 부정부패가 곳곳에 만연돼 있는 우간다에서의 활동은 하루 하루가 도전이었다.
120명의 스탭 가운데 외국인 선교사는 단 10명. 법이라든지, 정직한 근무가 뭔지 모르는 이들과 일하면서 해고한 숫자는 86명에 이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갖은 위협 속에 죽지 않은 게 다행이긴 하지만 불의를 끝까지 용납하지 않는 원칙을 지켰다. 그러면서 직원들의 월급을 일년 마다 올려주고 가족 보험도 확대해 주며 당근 정책을 병행했다. 이 선교사는 “다행히 나중에는 말단 직원 가운데 성실하게 일하는 좋은 재목들이 발견돼 보람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효율적인 조직 관리가 꼭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최선의 길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고있다. 한 아이의 심장병 수술을 도와주었더니 마을 주민들이 변화되고 지역 국회의원이 달라지는 현상을 목도하게 됐다. 미리 계획하고 명령하는 사업 보다 스탭들이 제안해 올리는 사역들이 훨씬 효과적으로 지역 주민들의 자활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작년 11월 선교지를 떠나온 그는 방향 전환을 한 때 고려하기도 했다. 신학을 계속 공부할지, 선교단체에 들어갈지, 후배를 양성하는 일에 주력해야할지 고민하다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하나님이 여전히 그를 그곳에서 부르신다는 확신이 들었다.
“현지를 떠나고 보니 내가 얼마나 지쳐있었는지 알게 됐다”는 그는 후원교회인 워싱턴성광교회가 주최한 선교대회 참석차 잠시 워싱턴에 머물고 있다.
둘째 날 특강을 맡은 그가 강조한 요지는 “하나님께서 이미 선교의 지평을 열어 놓았으니 원래 선교 비전으로 돌아가자”는 당부였다.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선교를 해야지 선교 단체를 관리하느라 눈치보는 선교는 안된다는 경고도 된다. 이 선교사는 “그걸 난 전에 깨닫지 못해 15년간 뺑뺑이를 돌았다”며 “존경받고 추앙받는 선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열어 놓으신 길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르완다로 돌아가면 해야 할 일도 아직 결정해 놓지 않았다. 현장에서 이미 하나님이 일을 벌리고 계신다는 확신 때문이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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