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석유와 맺은 인연은 기원전부터다. 지표면에서 흘러나오는 원유와 아스팥트는 고대 사람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었던 천연자원이었다. 기록에는 기원전 3,200년경부터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등지에서 석유를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표면에도 물이 새지 않도록 석유와 흙을 뭉갠 아스팔트를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불을 지펴 세상을 밝혔고 설사를 멈추게 하는 의약품으로 접착제로, 또는 무기로 미이라 제작용으로, 건축이나 조선, 공예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다.
19세기 중반 석유를 이용한 내연기관의 등장하면서 석유는 금보다 더 갚진 물건이 돼버렸다. 열국들은 앞다퉈 석유 쟁탈전에 나섰고 일찌감치 서구 문명을 받아들인 일본은 공업 발전에 필요한 석유 확보를 내세워 대륙 정복에 나서는 계기로도 삼았다. 석유는 생활혁명도 가져왔다. 플래스틱에서부터 의약품, 비료, 페인트 등등 현대 생활에서 사용되지 않는 곳이 없다.
석유가 그렇다고 한없이 복만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1973년10월 제4차 중동 전쟁이 터지자 페르시아만의 6개 산유국이 석유를 무기삼아 가격 인상, 생산량 축소를 단행하면서 세계를 흔들어 댔다. 1978년12월 호메이니 주도로 회교 혁명을 일으킨 이란이 석유수출 중단을 선언하면서 인류는 두번이나 석유 파동으로 춤을 춰야 했다.
석유는 동식물의 숨통을 조이는 무서운 적이기도 하다. 기름에 젖은 땅에는 생물이 살수 없다. 끈끈한 유막이 생물의 호흡기를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2007년 12월 한국 태안반도 앞바다에 정박 중이던 홍콩 선적 대형 유조선이 크레인선과 충돌해 7만8,000여 갤런의 원유를 바다에 쏟아 부었다. 이 원유는 곧바로 조류를 타고 만리포 해안을 덮쳐 순식간에 해안 생태계를 초토화 시켰다. 물보다 가벼운 기름은 수면위에 떠오르면서 물속의 산소를 차단하고 독성까지 뿜어내 물속의 생물을 죽게 만든다. 갯벌의 생물이 죽고 이를 먹고사는 동물들도 굶어 죽거나 기름에 푹 젖어 기력 쇠진으로 죽는다.
1989년 엑슨 모빌사 소속 유조선 발데스가 알래스카 앞바다에 좌초하면서 연어, 해달, 바다새, 물범등이 서식하는 프린스윌리엄사운드 일대의 생태지를 위협했다. 엑슨 모빌은 사고 후 피해지역 청소와 소송 처리로 20억 달러를 투입했다.
미국은 지금 멕시코만 원유유출로 또다시 비상이 걸렸다. 지난 4월20일 원유 시추 작업을 벌이던 시추선 ‘딥 호라이즌’이 개스 폭발로 바다에 침몰하면서 바다 속 유정에 박아 놓은 파이프가 끊어져 버렸다. 바닷속 유정은 하루 5만 갤런에 달하는 원유를 한달이 넘게 뿜어내고 있다.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앨라배마, 플로리다 등 미국 남부 해안지역을 잇는 멕시코만은 굴 양식의 보고이자 작은 제비 갈매기 등 수십 종의 희귀생물들이 보금자리로 삼고 있는 곳이다. 유출 원유가 거센 바람을 타고 해안으로 몰려든다면 일대는 걷잡을 수 없는 대재앙에 빠진다.
1마일 해저(1,500미터)에서 파이프의 구멍을 막는 작업은 쉽지가 않다. 유정 소유회사인 영국 석유회사 BP가 ‘톱 킬’ 장치를 이용해 흙과 골프공을 밀어 넣은 후 압력이 내려가면 콘크리트로 봉해버리는 작업에 돌입했지만 성공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이 지역 주민들은 감시 감독 소홀과 안이한 사후 처리의 책임을 물어 연방정부에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대선 당시 원유 시추에 반대했다가 실업률 해소와 지역 경제 해소책으로 동부 연안의 부분 유정 개발을 승인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7일 더 이상의 시추 허가를 중단해 버렸다. 연안 유정 개발을 강력 촉구해오던 새라 페일린 전 공화당 부통령 후보도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있다.
한번 파괴된 자연은 복구에 오랜 시간을 요구한다. 지구는 자연 파괴의 책임을 고스란히 인간에게 되돌린다. 산림을 파괴하면 홍수로 되갚고 쓰레기를 버리면 식수 오염으로 되갚는다. 멕시코만 원유 유출은 환경 파괴에 대한 대자연의 경고다.
김정섭 국제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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