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랑스러운 陸士人상’ 수상 VA 권영대씨
“이름 모를 산야에서 숨져간 동기들이 생각납니다. 육사 생도의 자부심을 되돌려 주고 명예회복을 시켜줘 고마울 따름입니다.”
지난 4일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자랑스러운 육사인상’ 시상식을 남다른 감회에 젖어 지켜본 워싱턴의 한 노병(老兵)이 있었다. 비록 머나먼 미국 땅에 살고 있어 참석은 못했지만 그의 가슴은 막 사관학교에 입교한 당시처럼 벅차고 흐뭇하기만 했다.
버지니아 알링턴의 권영대 예비역 육군 대령(82세). 그는 이날 육사 총동창회로부터 생도 전원이 ‘특별 공로상’을 받은 2기생중의 한명이었다.
‘비운의 기수’라 일컬어지는 육사 2기생들. 육사 입교 얼마 뒤에 6.25를 만나 생도 신분으로 전쟁에 참전했던, 그래서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던 비운의 주인공들. 권영대 씨도 그 불운한 시대의 군인이었다.
권씨는 1950년 6월1일 육사 정규 4년제 생도로 입교했다. 그러니까 2년제이던 10기생과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4년제 11기생 사이에 낀 생도였다. 그러나 2기는 입교의 기쁨도 가시기 전인 25일 만에 6.25전쟁이 발발했다. 동기생 333명은 생도 신분으로 포천 방어전에 긴급 투입됐다.
“전술도 모르고 M1 소총 몇 번 쏴 보고 전투에 나간 겁니다. 참호 파고… 말이 생도지 소총수에 탄약수로 전투를 했어요.”
전투는 극렬했지만 탱크를 앞세운 인민군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첫 전투에서 생도 86명이나 전사했다.
“우리에겐 육사 생도란 긍지가 있었어요. 그래서 죽어도 후퇴는 안 한다고 버텼어요. 선배들한테 억지로 끌려 후퇴할 수밖에 없었지요.”
2기생들은 낙동강까지 물러났다. 권씨와 동기생들은 부산에 설치된 전시 장교 양성기관인 육군종합학교 1기생으로 편입됐다. 한 달 남짓 훈련받고 그해 10월 임관해 5사단 포병 창설요원으로 배속됐다.
그 후 금성지구 전투, 노리고지와 연천의 베지 고지 전투 등 숱한 사선을 넘나들었다. 대위로 휴전을 맞은 그는 육군포병학교 교수단장을 거쳐 7사단 포병사령관으로 1977년 27년만의 군 생활을 마감했다. 그리고 1983년 도미했다.
처음으로 4년제 육사 생도로 입교했지만 졸업도 못한 불운의 2기생들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6년 명예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
이어 6.25 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올해 2기 생도 전원이 ‘자랑스러운 육사인상’을 헌정 받으며 ‘비운의 기수’란 딱지를 완전히 뗐다.
권영대 예비역 대령은 “얼마 전 육사에 가보니 2기생 이름이 동판에 새겨져 있었다”며 “이제야 전사한 동기생들이 하늘나라에서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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