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 발발 첫 뉴스’ KBS 전 아나운서 위진록씨
6.25 남침을 처음 방송했던 전 KBS 아나운서 위진록(82)씨. 한국전 발발 60주년을 맞는 올해는 그에게는 특별하다.
한국동란이 시작되던 날 새벽 5시께 서울 중앙방송국의 당직 아나운서였던 위진록씨는 국방부에서 한 군인이 오늘 새벽 북한군이 38선 전역에서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다는 사실을 즉시 방송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방송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일개 아나운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해, 당시 방송 국장서리였던 민재호씨에게 전화를 걸어 사태를 보고하고 결국은 한국전쟁 발발 첫 소식을 전하는 아나운서가 되었다.
평양사범을 졸업한 위씨는 ‘청실홍실’로 유명한 작가 조남사, 배우 장민호 등과 같이 방송국 연습생이 되어 KBS와 인연을 맺게 되고 적어도 전문대는 나와야 응시할 수 있는 아나운서 시험에 응시해 보라는 방송국 간부의 권유로 1947년 19세의 나이로 아나운서가 됐다. 그는 “아마도 기네스북에 올릴 만한 세계 최연소 아나운서일지도 모른다”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위씨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김구 선생 장례식 등을 중계방송하고 9.28 수도 탈환소식도 최초로 방송하던 패기가 넘쳤을 당시를 떠올리며 “6.25는 한 인간, 한 가족의 안타까운 역사도 더불어 양산한 무자비한 민족의 비극 중 가장 큰 비극”이라고 말한다.
9.28 수복 후, 유엔군이 파죽지세로 이북으로 진군할 즈음 도쿄에 있던 유엔군 총사령부 방송에 1개월 체류 예정으로 파견되었던 위씨는 중공군의 개입과 함께 한국전이 장기 대치국면으로 접어들고 8년 후, 유엔군 사령부가 오키나와로 이전하게 됨에 따라 유엔군 방송이 중단되는 72년까지 오키나와에서 살았다.
지난 72년 기지 내 미국학교에 다니던 3자녀 교육문제로 위씨는 미국으로 이민 오게 되었고 허모사비치의 바닷가에서 햄버거 장사도 하고 서점도 운영해 보고 커뮤니티 신문도 발행하는 만만찮은 미국생활을 하면서도 삼남매 자녀를 예일, 하버드 출신 중견 사회인으로 키웠다.
클리블랜드 산자락이 맞닿아 있는 코로나의 전망 좋은 집에서 사는 위씨는 80줄에 들어서면서 늘 큰 사업 하나에 매달려 살고 있다고 한다. “가장 나답게 살다가 존엄성 있는 죽음을 맞는 사업”이라고 했다. 그동안 5권의 수필집을 낸데 이어 현재 여기 저기 기고하고 있는 클래식 음악해설을 모아 9월쯤에는 단행본으로 엮어낼 예정이다. 그리고 나서도 글 쓰는 일은 계속하고 싶다며 “한 달에 한 번씩, 독후감을 발표하고 서로 형제애를 나누고 있는 ‘리버사이드 한마음독서회’는 나의 가장 소중한 모임”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국가보훈처로부터 6.25 행사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을 받아 이번에 한국에 나가게 되었다”며 “때로는 분노, 실망에 외면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한국은 역시 내 나라임을 가슴으로 느낀다”고 말하는 위씨는 80대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건강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종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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