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하게 살면서 술·담배 같은 나쁜 습관을 멀리하는 목회자들은 오래 살 것 같지만 실제로는 평균수명이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다. 얼마 전 듀크대학이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목회하는 감리교 목사 1,7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이들의 건강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관절염과 당뇨, 고혈압, 그리고 비만 비율이 일반 미국인들보다 높았다. 또 다른 교단 목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소속 목사의 69%가 과체중에, 64%가 고혈압에 시달리고 있으며 13%가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건강과 장수의 상징이 돼야 할 목회자들이 이처럼 건강문제에 시달리는 것은 목회에 따른 정신적, 육체적 과로가 가장 큰 원인이다. 대다수 목회자들이 겪고 있는 내적인 문제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억압이라 할 수 있다. “많은 목사들은 자신을 돌보는 것을 이기적이라 생각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어떤 경우에도 노(no)를 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는 한 전문가의 진단은 이것을 지적하고 있다.
목사 역시 사람인 까닭에 분노와 좌절을 느끼고 상처를 입는다. 그런데도 신앙적인 이유로, 혹은 목회자의 스테레오타입에 부응하려 이런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한 채 억누르며 지내다 보면 이것이 속병으로 번지게 되는 것이다.
감정을 절제하고 다른 이들의 요구에 귀를 잘 기울여 주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성숙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런 평가가 정작 당사자에게는 해롭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감정을 억누르고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것이 마음과 부조화를 이루지 않는다면 권장해야 할 일이겠지만 그렇게 하면서 속으로는 “이게 아닌데”라며 갈등한다면 몸과 마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또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싫은 소리 못하고 감정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것이 지나치다 보면 이른바 ‘다른 사람 기쁘게 해 주기’라는 병증으로까지 발전한다. 너무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다 자기의 감정은 뒷전이 돼 버리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이것이 자신도 기쁘게 하고 긍정적인 인간관계 형성에도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런 평가를 받지도 못할 뿐 아니라 심한 상실감과 고통에 시달리기 일쑤다. 작가인 데니스 윌리는 “당신이 호인이니까 다른 이들이 잘 대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당신이 수의사니까 황소가 들이받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과 같다”는 비유로 이런 순진한 생각이 지닌 맹점을 꼬집는다.
그러고 보면 “욕먹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에는 상당한 진실이 담겨 있다. 실제로 장수한 노인들을 관찰해 보면 성격이 까칠한 경우가 많다. 주위 사람들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느낌과 생각, 그리고 불만을 거침없이 털어놓는 노인들이 장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너무 평판에 매달리지 않고, 속에 있는 것을 억누르기보다는 드러내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욕먹지 않으려고 너무 좋은 사람이 되려다 보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정기적으로 모여 철학을 공부하는 한 스터디 그룹에서 삼고 있는 화두라며 지인이 보내온 글은 마음의 부조화로 고통을 겪는 다른 이들에게도 화두가 될 만하다. “철학하는 것은 인간이 자기 스스로의 시선을 갖고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히 단호하게 이기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철학은 자기의 이기심으로 정직한 것. 그 정직함으로 행복을 이기적으로 추구하되 그러면서 타인의 행복을 침범하지 않으며 공존하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행복감을 위해서는 계몽된 상태의 이런 이기심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성직자들에게야 순종과 희생이 숙명이라지만 우리들까지 그럴 이유는 없다. 모든 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려다 보면 결국 나 자신이 가장 불행한 사람이 돼 버린다. 너무 눈치 보지 말자. 그리고 가끔은 까칠해져 보자.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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