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11월 7일, ‘누가 울어,’ 안개 낀 장춘단 공원’을 부르던 불세출의 가수 배호가 29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거의 40년 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중학교 2학년쯤일 테니 동네 형들과 고갯길 넘으면서 밤에 휘파람은 귀신을 불러 모은다는 음산한 괴담도 뒤로한 체 ‘영시의 이별’을 따라 불렀다.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았던 탓에 좀 더 조숙한 친구들이 배호의 걸쭉한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목소리를 내려 깔면 덜 자란 수컷의 엉거주춤한, 따라 하기는 어설프기가 짝이 없었겠지만 그 시절 서로 남자임을 확인하는 일종의 절차 같은 비장감도 있었다.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이니 노래 부르는 사람의 형상을 까만 레코드판 겉표지의 그림으로 짐작해야 했고, 건방지게 뒤돌아보는 듯한 복실한 귀공자 스타일의 가수 배호는 신비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노래가사를 각색해서 만든 영화 ‘돌아가는 삼각지’ 에서 배우 문희와 김희라가 비 내리는 삼각지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켜내지 못하고 울면서 돌아가는 장면과 함께 백업되는 배호의 노래는 나의 애창곡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배호의 삼촌이자 작곡가 김광빈씨는 배호의 노래를 ‘절규’라고 했다.
저음을 기반으로 음계의 한계를 넘나드는 고음이 없이는 절규가 되지 않는다. 그 절규가 리듬으로 다듬어져서 저 밑바닥을 긁어 올리는 듯한 신비의 음색은 ‘고독’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때까지 대중가요 가수들의 목소리에 익숙해 있던 국민들에게는 무슨 ‘뒷골목 깡패’의 목소리니, ‘환자의 목소리’라느니 부정적인 평가들이 있었던 사실을 뒤로하고 작곡가 전우와 배상태를 만나면서부터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하게 된다.
여성들에게는 고독이 뚝뚝 떨어지는 외로운 남자, 말 못하는 순정의 전도사로 다가섰고, 남자들에게는 어쩌면 편안하게 따라 흉내 낼 것 같은 저음의 깔린 목소리에 누구나가 한두 번쯤 겪었을 법한 노랫말이 그들을 매료시켜 나갔다.
수많은 음악의 장르가 현존하지만 일반인들이 접하는 노래나 음악이라는 게 학교에서 배우는 범주와 방송전파를 통해서 얻게 되는 게 고작이었던 시절이었으니 서민들과 동고동락하는 애환이 곡과 가사에 그대로 녹아있게 마련이다.
추억의 사진을 통해서 아름답던 때를 기억해 내기도 하지만, 항상 언제 어디서건 꺼낼 수 있는 애창곡이야말로 사진이 가지지 못하는 편리함까지 대신해 주고도 남기 때문에 ‘애창곡’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의 창작도구이기도하다.
배호는 그가 노래했던 ‘마지막 입새’처럼 해방 전이던 1942년 중국 산동에서 태어나 휴전 후 14살 어린 나이에 피난지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드러머와 악단생활을 거치며 얻은 신장염으로 퉁퉁 부은 얼굴과 가뿐 숨을 모아쉬어 가면서 홀어머니를 뒤로하고 젊은 생을 마치게 된다.
가을이 되고, 더구나 11월이 되면, 끈질기게 남아 있던 마지막 잎새처럼 생의 애착을 노래에 실어 오늘까지 전해 주는 천상의 가수 배호가 더욱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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