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법률시장의 문을 열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 지 벌써 20년이 넘었지만, 시장의 문은 여전히 닫힌 채로 있다. 별 것 아닌 것으로 늘 다투지만, 일단 자신들의 밥그릇이 걸린 사안에는 여야 없이 잘 뭉치는 율사 출신 국회의원들의 입김이 한 몫을 단단히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서도 한국 정부는 지난해 9월 외국법 자문사법을 만들었다. 내친 김에 한국 법무부는 이 법의 시행령까지 공포했다. 이 시행령은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의 변호사들이 한국에서 활동하는 규정을 담고 있는데, 현재 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나라는 스위스 등 14개 국가이다.
이들 나라에서 면허를 취득한 변호사는 외국법 자문사로 한국에서 활동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변호사들이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외국 자문사로 등록하지 않았다. 외국 변호사들은 한국 법무부의 승인을 받아서 변협에 등록해야 하지만, 외국 법률자문사의 등록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대한 변협은 아직까지 등록에 필요한 규정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다.
한국 법률시장 개방은 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나라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아직까지 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아직 맺지 못한 미국의 변호사들에게는 법률시장이 닫혀 있다. 3년 전에 합의를 본 한미자유협정은 양국 의회를 통과하지 못한 채 일부 조항을 놓고, 물밑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양국 정부가 FTA 체결 의지가 강하므로, 늦어도 내년까지는 협정이 체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상당수 미국 변호사들이 나가서 일을 하고 있다. 개업은 불가능하지만 한국 직장이나 로펌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영미계 로펌들은 서울에 직접 사무실을 치릴 수 없어서 주로 홍콩과 도쿄에 사무실을 두고 한국 일을 보고 있다.
한국의 법률시장은 자유무역협정의 내용에 따라서 3단계로 개방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경우에는 3단계 시장개방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 첫 단계에서는 해당 국가에서 3년 이상 일한 경험이 있는 변호사에 한해서 등록절차를 거친 뒤 한국에서 미국법, 그리고 미국이 조약 당사자인 국제조약 및 국제공법 분야에서 법률 서비스를 할 수 있다. 아울러 미국 법률회사들은 이 단계에서 한국에 지사를 설립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한미 무역협정에 발효된 지 2년 이내에 미국 로펌은 한국 로펌과 연대를 할 수 있고, 양국법이 모두 관계된 케이스는 함께 수임을 해 수익을 나눌 수 있다. 한미 무역협정이 발효된 지 5년 이내에 미국 로펌은 한국 법률회사와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고, 일정 조건 아래에서 한국 변호사를 고용할 수도 있다.
한국의 법률시장이 열리면 수혜대상 영순위는 국제거래 분야를 독식하는 대형 로펌이 될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 규모가 크지 않은 로펌들은 별다른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국제 거래가 많은 한국의 대기업은 지금도 국내외 대형 로펌에 케이스를 맡기지 규모가 작은 로펌 혹은 개인 변호사에게 일을 맡기는 일은 없다.
시장 개방이 된 처음 한두 해 동안 개인 변호사나 소형 로펌들은 이민법 같은 틈새시장을 놓고 수임경쟁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장이 완전하게 열리는 3단계에 가면 외국 변호사들이 한국 변호사들과 파트너십으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때가 되면 비로소 개업한 미국 변호사들이 보다 폭넓게 한국에서 할 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법률시장이 열리면 한국 법률회사들이 미주시장에 진출할 일은 없고 변호사가 넘쳐나는 미국에서 한국시장으로 가서 일을 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므로 한국의 법률시장 개방은 미국에 있는 한인 변호사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김성환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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