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턴, 타임스퀘어 한복판, 방문객 안내센터 한쪽 벽엔 색색의 쪽지가 가득 붙어 있다. ‘Wishing Wall’ - 소원의 벽이다.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들러 자신의 새해 소원을 색색의 쪽지에 적어 남긴다. 뉴요커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각자의 언어로 남겨 둔 꿈들 - 개인의 결의에 찬 목표, 내일의 희망, 간절한 사랑에서 세계평화 기원까지 담겨있는 이 색색의 ‘소원’들은 새해를 맞는 카운트다운이 끝나는 그해 31일 밤 2,000파운드의 콘페티와 함께 타임스퀘어에 꽃가루처럼 뿌려지게 된다.
“좋은 남자 만나게 해주세요, 결혼할 만한”이라고 한글로 쓴 핑크빛 쪽지.
복권 당첨에서 엄마의 암 치료, 세계평화까지 다양
매해 섣달 그믐날 콘페티로 타임스퀘어에 뿌려져
2011년을 향한 2010년의 소원들도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색다른 내용도 없지는 않다.
“조와 사브리나에게 : 당신들이 헤어지기를 바랍니다. 조와 데이트하기 원하는 사람이 있어요”
“데이빗에게 : 제발 너의 엄마와 말 좀 하기 바란다”
그렇다고 아무 말이나 다 써 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내센터의 홍보직원 캐롤린 드리스콜에게 일단 검사를 받아야 한다. 물론 대부분은 다 무사통과다. 자신의 성적 욕망을 써서 붙이려던 한 남자의 쪽지는 거부당했다.
8×10피트의 크기, 빼곡히 들어찬 벽의 사이사이 빈 공간을 찾아 쪽지를 꽂아주며 드리스콜은 방문객들의 호기심에 찬 질문에도 친절히 대답해 준다.
“돈 내야 하나요?” 색종이를 담은 유리 항아리와 펜을 바라보던 한 여자가 묻는다.
“아니, 아니예요. 이건 정말 즐겁기 위해 만든 거랍니다” 드리스콜이 손을 내저으며 쾌활하게 말한다.
“요즘 세상엔 공짜란 없는데” 여자가 메마르게 대답한다.
하긴 그래서 벽 위에 남겨놓은 많은 소원이 “복권 당첨”인지도 모르겠다. 쪽지의 소원들을 하나하나 읽어보면 요즘의 헤드라인 뉴스와 드라마 스토리, 누군가의 일기장, 그리고 결혼상담가의 메모 등을 모아 만든 콜라주 같기도 하다…”모든 장병들이 다 집으로 돌아오기를” “제발 일자리를 주세요” “빈대는 이제 그만”(아파트와 호텔에서의 빈대 출몰로 뉴욕시민들이 한동안 곤욕을 치렀다) “우리 엄마의 암을 낫게 해 주세요” “저스틴 비버의 콘서트 티켓을” “우리 남편이 평소에 좀 깨끗해지기를” “LOVE!”
버지니아에서 온 고교 수영선수 메건 호기는 100미터 자유영 기록 경신을 빌었고 친구인 모건(16)과 헬렌(20)은 날씬해지는 게 소원이었다. 둘 다 크로스컨트리 선수로 손색없게 훌륭한 체격인데도 맥주가 아닌 복부 근육 ‘식스 팩’을 원한다고 쪽지에 적어 넣었다.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이렇게 써 붙이기까지 했으니 더 자주 생각할 것이고 생각할 때마다 노력할 테니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꿈보다 멋진 해몽을 달았다.
“난 내 소원이 무엇인지도 몰라요, 슬픈 일 아녜요?”라고 토론토에서 온 교사 스테이시 볼란드는 말했다. 한참 생각한 후 “세상의 모든 어린이가 사랑받고 교육받기를”이라는 숭고한 소원을 써 넣은 그는 잠시 후 이렇게 덧붙였다 : “추신 - 새 코치(명품)백도 하나”
쉽게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나 내용도 있다. 드리스콜은 여러 명의 친구와 함께 왔던 한 청년을 기억한다. 그는 다른 친구들에게 먼저 쓰도록 했다. 그들이 다 써 붙이고 간 후 그는 맨 마지막에 자신의 소원을 쪽지에 적었다 : “친구들에게 내가 게이임을 고백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기를”
“내 아들이 재활치료를 받게 되기를 빕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앤 한 달을 못 넘길 겁니다”라고 써 붙이고 간 한 중년남자의 쓸쓸한 뒷모습도 드리스콜은 잊지 못한다.
앞서 인용한 “데이빗에게 - 엄마에게 말 좀 해라”는 쪽지는 그의 이모가 써 붙인 것이다. 이모는 데이빗이 볼 수 있도록 벽에 붙은 쪽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릴 예정. 혹 데이빗의 마음을 움직여 엄마와 화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말하자면 이 하나의 작은 벽에 휴머니티의 모든 게 담긴 셈이지요. 이곳에 자신의 간절하고 따뜻한 한 부분을 남겨놓는 의식이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타임스퀘어 협회의 팀 탐킨스 회장은 말한다.
사실 소원의 벽은 타임스퀘어를 샤핑과 엔터테인먼트의 메카로 만들려는 대규모 장기적 플랜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상당히 반응이 좋은 관광명소로 부상한 겁니다”
벽에 남기려는 소원들이 너무 쇄도하는 바람에 하루에 2번씩 벽에 붙은 것을 다 떼어내야 한다. 떼어낸 쪽지들은 버리지 않고 모았다 약 2,000파운드의 콘페티(색종이 조각)와 함께 뉴이어스 이브에 꽃가루처럼 뿌려지게 된다.
전 세계인들이 들르는 관광지답게 쪽지에 쓰인 언어도 갖가지다. 영어, 불어, 스패니시는 물론 일본어, 중국어와 아랍어도 심심찮게 보인다. 지난해 12월 마지막 주 벽에는 한글 소원도 붙어 있었다. 핑크빛 쪽지엔 이렇게 적혀있다: “좋은 남자 만나게 해주세요. 결혼할 만한” ^-^
남가주에서 온 다이앤 발렌틴과 워싱턴 주에서 온 브렛 켈리가 자신들의 새해소원을 소원의 벽에 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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