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100명이 조금 넘는 업체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매일 새벽 헬스클럽을 찾아 트레드밀에 오른다. 트레드밀에 오를 때 그가 빠지지 않고 챙기는 것은 소형 녹음기다. 시속 4마일 정도에 맞춰 놓은 채 1시간가량 걷는 김씨는 걸으면서 그날 계획과 경영 전반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곧바로 녹음기에 담는다.
김씨는 트레드밀 위에서 걸을 때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가지런히 정돈되는 느낌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그에게 걷기는 그저 단순한 건강지킴이가 아니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사업과 관련한 구상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자연 속을 걷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트레드밀 위에 몸을 맡기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걸을 때 생각이 정돈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걷는 행위는 리듬감을 만들어 주고 이런 리듬감은 생각을 자극한다. 걷던 중 답답하게 막혀 있던 생각이 갑자기 확 뚫린 경험이 누구나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걸어야 생각이 움직인다는 말에는 상당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 인간의 뇌는 하루에 최소 수마일 씩을 걸어야 했던 환경에서 진화했다. 그래야 최소한의 생존이 가능했다.
이런 이유로 가만히 앉아서는 최적의 기능을 할 수 없는 것이 인체이다. 우리 몸 에너지의 20%를 소비하는 뇌로 부지런히 에너지를 넣어 주려면 몸을 움직여서 혈류를 공급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 근무시간에 직원들이 운동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기업들은 어리석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면 생산성이 높아지고 더 좋은 아이디어들이 나온다는 것을 다 알고 하는 현명한 투자이다.
한국에서는 요즘 걷기 열풍이 뜨겁다고 한다. 걷기를 통해 건강을 지키려는 이른바 걷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각종 걷기 지침서들이 발간되고 온갖 신소재와 첨단 기법을 동원한 고가의 운동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니 걷기 열풍이라 할만도 하다.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것은 새삼스런 사실이 아니다. 몸을 많이 움직이는 것을 천하게 여겼던 시절 허준 선생은 이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동의보감에 “좋은 약을 먹는 것보다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낫고 좋은 음식보다 걷기가 더 낫다”고 적었다. 지속적인 체중감소에도 걷는 것이 달리기보다 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걷기가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 속에 들어온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이 같은 열풍에는 7,000마일이 훨씬 넘는 실크로드를 혼자 걸어서 여행한 후 ‘나는 걷는다’라는 책을 펴낸 프랑스의 퇴직 언론인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기여가 적지 않다.
이 책이 출간된 후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걷기가 급속히 확산됐다. 베르나르에게 걷기란 육체적인 운동이라기보다 정신적인 운동이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청년 시절 스위스에서 파리까지 보름간 걸어서 여행했던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이 도보여행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노라고 술회하기도 했다.
걸으면서 느끼는 땅의 부드러운 감촉, 천천히 귀와 눈을 채워주는 자연 혹은 거리의 풍경과 소리들은 자동차나 비행기를 탔을 때는 경험하기 힘들다. 점심 식사 후에 가볍게 회사 주위를 도는 동료에게 왜 걷느냐고 물으니 “건강도 건강이지만 살아 있는 것들이 내뿜는 생명력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신묘년에는 조금 더 많이 걷자. 기나 긴 걷기가 불가능하다면 짧은 산책도 좋을 것이다. 또 헬스클럽의 트레드밀인들 어떠하랴. 걷기를 정신적 행위로 여긴 선각자들의 경지에 이르지 못해도 무방하다. 건강에 그만큼 좋은 일이고 적어도 그 순간만은 자기가 몸의 주인 됨을 확인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누가 아는가. 열심히 걸으면서 생각하다 보면 “철학의 첫 스승은 우리의 발”이라고 했던 루소의 말이 깨달음으로 다가오는 행운을 덤으로 누리게 될지.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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