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춘에서 보름간 숨어있는 동안 밖에 나갈 수 있는 시간은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또는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할 때 잠시 뿐. 꼼짝 없이 숨어서 시간이 흘러갔다. 장소를 인근의 다른 장소로 옮겨서 또 20일 정도를 보냈다. 안 그런 척 했지만 답답한 것은 물론이고 피를 말리는 기분이 들었다. 먹는 건 잘 먹었으나 효성이를 지켜주는 사람들이 계속 협박을 해왔다. “말을 안 들으면 죽인다, 돌려보내 버릴 거다” 이런 식이었다. ‘그 사람’은 3, 4일에 한번 씩 왔다. 그럴 때마다 엄마와 전화를 할 수가 있었다. 엄마(마영애)는 효성이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짐작한 듯 다시 탈출을 종용했다. “교화시로 나올 수 있겠니” “있을 것 같아요” “담장을 넘어 달아나거라” “택시를 타고 시내에 들어가면 한글 간판이 있는 가게로 들어가서 도문에 있는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해라...”
어렵게 중국까지 왔으면서도 어머니가 있는 한국으로 의 출발이 지연되고 있는 것은 효성이의 몸값 때문이었다. 그 사이에 효성이를 데리고 있는 이들은 전화로 계속 효성이 어머니와 흥정 아닌 흥정을 하고 있었다.(당시 한국에서 순대집을 운영하고 있던 마영애, 최은철씨는 하루 세 시간씩 자고 일해 겨우 돈을 마련했는데 브로커들이 비용을 자꾸 올리는 바람에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고 술회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이 “비행기를 타러 가자”고 했다. 목적지는 심양. 연길에서 하루를 자고 심양으로 가기로 했다. 교화시에서 머리를 깎고 한국 청소년들이 입는 스타일로 옷을 갈아 입었다. 심양 호텔에는 어머니가 보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씨의 기억에 의하면 원래 대련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심양으로 바뀌었다.
‘효성이 탈출 작전’은 간단하고도 기발했다. 또 이것은 한국에서 중국으로 여행을 온 가족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이 가족 일행은 효성이 또래의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있었고 큰 애의 여권을 사용해 세관을 빠져나가자는 계획이었다. 공항에 도착한 후 효성이는 몸값을 치르고 드디어 어머니가 보낸 사람의 보호 아래 들어가게 됐다. 공항에서 대한항공을 기다리며 ‘날밤’을 세웠다. ‘무탈하게’ 세관을 통과했고 하늘을 날았다. 두 시간 뒤 인천 공항이 보였다. 전혀 새로운 세상, ‘미제 원쑤’가 인민을 압제하는 나라 ‘대한민국’에 간다는데도 어머니를 보게된다는 기대 때문인지 전혀 떨리지 않았다. 인천 공항 세관도 위조 여권을 이용해 감쪽같이 통과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는 잠깐 웃지 못 할 해프닝이 일어났다. 승객들이 다 나왔는데도 마씨는 효성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사고가 났나보다 하고 가슴이 덜컹했습니다. 무사히 비행기를 탔다고 들었는데...” 잠시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한 켠에 의자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이 보였다. 그중에 효성이가 있었다. 엄마와 헤어질 때 겨우 턱에 닿았던 아이, 평양서 출장 떠날 때 잠옷바람에 스포츠 머리를 하고 아빠와 함께 “엄마 빨리 갔다 오세요”하고 배웅하던 아이, 그 아이는 아니었다. 못 알아본 게 당연했다. 빨리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엄마에게 효성이는 전혀 다른 아이가 돼있었다. 몇 번의 사선을 넘어 한국까지 온 효성는 엄마 품에서 응석 부리던 기억 속의 아이는 아니었다.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엄마와 헤어지고 또 그런 연유로 아버지가 불행하게 최후를 맞아야 했던 일들은 효성이에게 씻기 힘든 상처를 남겼고 훗날 미국에서 적지 않은 정신적 방황을 하게 되는 이유가 됐다. 그리고 이렇게 극적으로 만난 모자의 행복도 잠시. 알 수 없는 운명에 끌린 듯 또다시 기약 없는 헤어짐의 아픔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엔 평양에서 인천까지의 거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고, 게다가 지구를 반 바퀴나 도는 더 큰 모험이었다. <계속>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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