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개막식에서 작가들이 전시회를 축하하고 있다. 앞줄 왼쪽 유제화, 그 뒤로 왼쪽부터 김휘부, 안영일, 강태호, 한사람 건너 현혜명. 그 뒷줄 가운데 검은 모자 쓴 사람이 김소문. <이은호 기자>
“세계를 이해하는 힘을 주는 것은 당신의 고향이다”(톨스토이)
LA 한국문화원이 기획한 재미원로작가 6인 초대전 ‘인내+열정’을 보면서 내내 톨스토이의 말이 맴돌았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것은 바로 고향의 색깔과 냄새였다. 고향은 곧 어머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몸은 비록 미국에 살고 있지만, 작품에 나타난 바탕 정서는 고향을 보듬어 안고 있다.
안영일, 현혜명, 강태호, 김소문, 김휘부, 유제화 이 여섯 작가는 연륜이나 그동안의 활동상으로 볼 때, 남가주 한인 미술계를 대표할 만한 미술가들이다. 물론 ‘대표’라는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작가 선정에 세심하게 신경을 쓴 주최 측의 정성이 읽힌다.
이 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행운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대작 위주로 2∼3점씩만 전시했기 때문에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작품 세계를 읽기에는 아쉬움이 컸지만, 각자의 개성이 어울리면서 빚어내는 화음은 장중하고 크다. 마치 각자 일가를 이룬 솔리스트들이 협연하는 웅장한 교향곡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다.
몸은 팍팍한 사막에 살지만 물과 바다, 축축한 섬 풍경을 그리워하는 마음, 지구 표면을 응시하고 그것을 모성애로 승화시키려는 노력… 작가마다 오랜 연륜으로 무르익은 탄탄한 자신의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고향의 힘이다. 한국적인 정서와 철학을 미국 또는 세계적 언어로 번역하는 다양한 방법론들은 커다란 울림으로 전시장을 압도한다. 한국과 미국이 작품 안에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한류의 바탕도 바로 그런 것이어야 할 것이다.
문학이나 연극은 한국어를 통해 표현되므로 이른바 ‘디아스포라 문학’이니 ‘이민 연극’이니 하는 말이 성립되지만, 이에 비해 미술이나 음악, 무용 등은 만국 공통어이므로 누구에게나 번역 없이 통할 수 있다. 흔히들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면 사정이 많이 다르다. 색깔, 선, 붓질, 소리, 몸짓 이런 것들이 말이나 글보다 오히려 더 미묘하고 까탈스러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작품 밑바닥에 깔려 있는 고향의 냄새와 소리, 색깔이 소중한 것이다.
오랜 세월 미국에 살면서 활동하고 있는 한인작가들의 작품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과는 확실히 다른 냄새를 풍긴다.
고향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힘, 그것은 매우 소중한 자산이요 가능성인데, 이번 전시회는 그런 가능성을 잘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 미술 세계화의 화살표를 바르게 제시했다고 평가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전시회를 마련한 LA 한국문화원에 박수를 보낸다.
듣기로는 이번 전시회는 개원 30주년을 넘기고 새 시대를 열어가는 LA 한국문화원이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기획한 특별전시회라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실 이런 전시회야 말로 문화원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앞으로 이런 무게 있는 기획이 더 자주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미국 주류사회의 관객들이 더 많이 와서 보고 느끼고 감동하도록 치밀한 기획력을 발휘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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