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말기환자들에게 그들의 상태를 정확히 알려줘 삶의 마지막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저 태양 아래 가장 슬픈 일은/사랑하는 사람들에게/안녕이라고 작별을 고하는 것. 멜라니 사프카라는 여가수가 직접 쓴 ‘가장 슬픈 일’(The Saddest Thing)이라는 노랫말의 첫 구절이다. 노랫말대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생애 마지막 하직인사를 건네는 것이 태양 아래 ‘가장 슬픈 일’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승에서 허용된 그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음을 알리는 일일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가족 가운데 누군가 말기 암 판정을 받았다면, ‘보통사람’들은 일단 그 사실을 환자에게 숨기려 든다. 환자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고, 가족은 물론 의사도 저승사자의 메신저 역을 맡고 싶어 하지 않는다.
가망 없는 치료·생명 보조장치로 고통만 연장
정신 온전할 때 마지막 시간 이용 선택권 줘야
그러나 미국의 암 전문의들이 새로 개발한 지침서는 환자들에게 그들의 상태를 가급적 빨리, 그리고 솔직하게 알려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지침서 초안을 작성한 미국 임상종양학협회(American Society of Clinical Oncology)의 최고 책임자인 알렉 릭터 박사는 “아직 의식이 있을 때 환자에게 사실을 알려 삶의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올 여름에 완간될 예정인 임상종양학협회의 지침서는 담당 의사들이 앞장서서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치료를 줄이고, 통증을 줄이는 경감치료(palliative care)와 병의 진행과정에서 나타나는 증상 완화에 초점을 맞출 것을 권장한다.
지침서는 이어 많은 말기 암 환자들이 안정요법(comfort care)과 같은 선택
대안에 대해 설명을 듣지 못했거나,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더 이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방사선 치료에 매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지적한다.
자신의 상태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환자는 무엇을 예상해야 하고, 어떤 치료법을 선택할 것인지에 관해 의사와 현실적인 대화를 나눌 수가 없다. 임상종양학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의사와 이같은 대화를 하는 말기 암 환자는 전체의 4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삶의 마지막 2주를 공격적인 방사선 치료를 받는데 소모하거나 불과 몇 개월 남지 않은 시간을 병원 입원실에서 보내는 환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상당수의 암 치료법이 대단히 비싸고 후유증을 유발하기 쉬운 반면 그 효과는 기껏해야 생명을 1~2개월 연장하는데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통증과 구토, 숨이 차는 증상을 덜어주는데 초점을 맞춘 경감치료도 백안시된다. 공격적인 치료 대신 경감치료를 받으라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포기선언이나 다름없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환자 가족들은 호스피스 서비스에도 곧잘 거부반응을 보인다. 보다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돕기보다 환자의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가능한 모든 생명연장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가족들의 강박관념은 그처럼 두껍고도 높다.
이와 관련해 릭터 박사는 호흡장애를 일으켜 병원으로 실려온 폐암 말기환자의 사례를 소개했다. 환자의 호흡이 가빠지자 가족들은 즉시 911에 연락을 취했다.
사실 숨이 찬 증상은 집에서 호스피스 치료로 진정시킬 수 있었지만, 가족들은 생명보조 장치를 원했다. 이로 인해 생의 마지막 며칠을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보내야 했던 이 환자는 가족들에게 작별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고, 유족들은 2만5,000달러의 병원비를 추가로 지불해야 했다.
유족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찾겠지만 과연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고, 환자가 원하던 바였다고 자신하기 힘들다.
피치버그의 종양전문 간호사로 활동하다 은퇴한 펄 무어는 죽음이 필연이라면 어떻게 이를 맞이할 것인지에 대해 미리 계획을 세워두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위암으로 세상을 떴다.
투병기간 가족은 물론 의료진도 너무도 뻔히 보이는 불가피한 결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고통스런 임종을 맞은 뒤 대학에 진학해 암 간호학을 전공한 무어는 자신이 돌보는 환자들과 “죽을 때까지 사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딸이 성년이 되기 무섭게 자신이 작성한 사망선택 유언장(living will)의 복사본을 넘겨주었다. 자신이 불치병 말기 판정을 받을 경우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하고 생명보조 장치를 사용하지 말라는 내용이 골자다. 그녀가 건강한 상태이기 때문에 딸도 마음의 부담 없이 어머니의 뜻을 받아들였다. 무어는 피츠버그의 유대인 헬스케어재단이 개설한 ‘클로저’(Closure)라는 프로그램에도 초기 입안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은 말기 암 환자와 가족들이 의사에게 그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이고, 피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일러준다. 클로저는 최근 수요가 증가하자 웹사이트(www.closure.org)를 개설했다. 임상종양학협회가 발간하는 지침서의 내용 역시 온라인(www. cancer.net)으로 접할 수 있다.
이른바 임종관리(end-of-life care)를 소개하는 이 지침서는 의사에게 여러 가지 치료 옵션의 장점과 단점에 관해 물어보고 자신이 원하는 ‘삶의 질’quality of life)이 어떤 것인지,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알려주라고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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