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이 양심적이어서 가게에서 물건을 구입한 후 알아서 계산해 돈을 놓고 나온다면 얼마나 이상적일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이런 광경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경제적이기도 하다. 계산대에 캐시어를 세울 필요가 없고 경비원이 없어도 되니 절약되는 돈은 물건 값에 반영되고 그 이득은 고스란히 손님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것이 신뢰의 경제적 가치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 인간의 본성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정직하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상황만 허락되면 부정을 저지른다. 이런 성향은 연령이나 직업, 피부색을 구별하지 않는다. 심지어 종교도 별다른 차이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갤럽여론조사에서 미국인들의 59%가 목사를 정직하다고 생각한 반면 중고차 세일즈맨을 정직하다고 평가한 사람은 단 5%였다. 사람들의 이런 믿음이 실제와 부합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실험이 실시됐다. 연구팀은 정직을 뜻하는 ‘어네스티’라는 가상의 가구회사를 만들어 목사들과 중고차 세일즈맨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가구를 구입해 줘 고맙다는 말과 함께 10달러짜리 환불금 수표를 넣었다. 실험 결과 두 집단의 50% 정도가 수표를 가로챘다. 양심수준이 비슷했던 것이다.
이것이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양심에 맡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그것은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하다. 그래서 도덕적 해이와 일탈을 막으려면 감시와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촘촘해야 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생계가 걸린 사안이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고 느낄 때 유혹은 억제되고 위축된다. 무인 도넛 판매대 위에 거울을 놓거나 사람 눈을 그려 놓으면 돈을 놓고 가는 비율이 2배 이상 높아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거리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들은 이런 기능을 한다. 도심의 감시카메라들이 범죄억지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입증됐다.
문제는 감시카메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다. 카메라가 가짜라는 것, 혹은 진짜이지만 고장 났다는 것이 약탈자들에게 들통 나면 오히려 더 큰 위험을 부를 수 있다. 이들에게 ‘모양만 감시카메라’는 일탈을 저지르고 싶은 유혹을 부추긴다. 역효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무수하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기업부정 사례로 꼽히는 엔론 사태에서 중심 역할을 했던 것은 감사를 맡고 있던 세계적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이었다. 엔론으로부터 연간 5,000만달러가 넘는 수수료를 받던 앤더슨은 엔론의 분식회계를 방조했다. 감시카메라가 고장 난 것을 알고 있던 엔론은 마음 놓고 부정을 저질렀다. 감시카메라가 고장 난 줄도 모르고 앤더슨에 대한 믿음으로 평생 모은 돈을 쏟아 부었던 일반 투자가들은 빈털터리가 됐다.
고장 난 감시카메라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한국의 저축은행들 때문에 피해를 입은 서민들 역시 금융감독원이 고장 난 카메라인 줄 모른 채 부실하고 부도덕한 금융기관에 돈을 맡겼다가 낭패를 당했다.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신뢰가 가장 이상적이지만 이것은 비현실적인 기대이다. 감독과 감시를 위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흔들리는 신뢰로 인해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이지만 나중에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국가기관과 금융기관, 기업들은 물론이고 정직 실험에서 드러난 것처럼 종교기관들도 예외일 수 없다. 형식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게 전부가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도록 항상 점검하고 정비해야 함은 물론이다.
월스트릿 발 금융위기 이후 이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것 같더니 조금 상황이 나아지자 다시 발을 빼는 분위기다. 엘리트집단의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파괴적인지는 이미 뼈저리게 경험했다. 월스트릿에 대한 규제와 감독 또한 고장 난 감시카메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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